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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의 통섭의 경영학] 15% 관세 뒤에 숨은 트럼프의 협상 전략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이로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들과의 협상을 통해 15% 관세율을 새로운 기본선으로 설정하게 된 셈이다. 15% 관세율은 단순한 세율의 조정이 아니라 미국이 추구하는 통상 전략의 전형을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다. 미국은 다시금 자국 중심의 질서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번 합의는 그 설계도 중 하나다.
당초 미국은 각 나라를 대상으로 25%, 30%, 심지어 철강·알루미늄 제품에는 50%에 달하는 고율 관세 부과의 위협을 시작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8월부터 실제로 25% 이상의 고세율 관세를 일괄 적용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협상의 시계를 앞당겼다. 이는 명백한 시간 압박 전술(time pressure tactic)이다. 기한을 설정함으로써 불확실한 미래의 리스크를 확정된 공포로 바꾸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의 입장에서는 원칙보다 생존을 고민하게 한다. 동맹국들은 이 시한 앞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고, 결국 15%라는 절충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협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전형적인 Aim-high 전술이다. 이 전략은 상대가 수용하기 어려운 높은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이후 타협안이 마치 양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법이다.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의 창립자인 로저 피셔(Roger Fisher)와 윌리엄 유리(William Ury)는 『하버드 협상법(Getting to Yes)』에서 이를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명명하며, “최초 제안은 협상의 기준점을 설정하며 이후 논의를 지배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미국은 고율 관세를 언급하며 공포의 기준점을 설정했고, 이후 15%를 제시함으로써 심리적 수용선을 유도했다.
트럼프의 Aim-high 전술은 이미 2018년 미·중 무역전쟁에서 검증된 바 있다. 당시 그는 5,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 전체에 대해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다. 초기엔 10%였던 관세를 25%까지 높이겠다고 경고했고, 이는 시장과 국제 사회를 크게 흔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온 1단계 합의(Phase One Deal)에는 관세의 일부 철회와 함께 중국의 대미 수입 확대가 포함되었고, 이는 미국이 실익을 챙긴 합의로 평가되었다. 실질적 조건은 초기보다 낮았지만, 심리적으로는 미국의 승리처럼 포장된 것이다. 이번 15% 합의 역시 동일한 공식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면 왜 15% 이하로는 협상 타결이 어려운걸까?
첫째, 트럼프의 정치적 전략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조정을 넘어 ‘강한 미국(MAGA)’이라는 상징을 유권자에게 제시하고자 했다. 오랜 시간 불공정 무역을 비판해 온 그는 자국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관세로 구현해 왔다. 15%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정치적 승리의 숫자다. 만약 10% 이하에서 타결되었다면, 이는 물러선 협상으로 해석될 수 있고, 내부 정치적 반발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둘째, 이미 미국이 제시한 최초 제안이 25~30%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8월 발효라는 구체적 시한과 고세율 위협이 공식화된 상태에서 15%는 이미 절충안이다. Aim-high 전술의 핵심은 ‘처음엔 과하게, 끝엔 합리적으로’다. 이 앵커링 효과를 무시하고 10% 수준으로 수용하면 전략 자체가 무너진다.
셋째, 경제적 실효성 문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분석에 따르면, 전략 산업 보호와 세수 확보, 수입 억제 효과를 함께 달성하려면 최소 15% 이상의 관세가 요구된다. 특히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산업에서는 단순한 가격 조정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 기술과 안보가 결합된 이 산업군에서 15%는 일종의 정책 ‘최소 유효선’이다.
넷째, 동맹국들이 내놓은 반대급부와의 균형 문제다. 한국, 일본, EU는 실질적 양보를 제공했다. 미국 입장에서 이만한 대가를 받고도 관세율을 10% 이하로 설정하면 ‘거래의 균형’을 상실하게 된다. 15%는 미국이 얻은 것과 줄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계산된 환산 비율이다. 관세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협상의 상징적 보상 구조로서 기능한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를 보면 꼭 15%가 최소 유효선인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별 상호 관세를 유예한 이후 처음으로 영국과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영국이 미국산 농축산물 등에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미국은 일부 관세를 낮춰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본 과세 10%는 그대로 유지됐다. 만약 한국이 이 시점에서 일본이나 EU보다 먼저 협상을 타결했다면, 10%에 준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협상 프레임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강조하며, 상대가 양보하도록 압박하는 구조를 선호해 왔다. 이번 15%는 다음 협상을 위한 ‘기준점 설정’이기도 하다. 이를 무너뜨리면 후속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전체 협상 구조의 일관성이 흔들린다. 앞으로 15% 이하로 합의가 되는 경우 굉장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이 장기적으로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관세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며,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성과 변동성을 키운다. 동시에, 미국이 협상의 고지를 독점하려는 자세는 동맹국과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 언제나 미국만이 이익을 가져가는 구도는 언젠가 반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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