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김혜순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시인 김혜순이 시집 <죽음의 자서전>으로 독일 세계 문화의 집(HKW)이 수여하는 국제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 작가가 이 상을 받은 것도, 시집으로 수상한 것도 처음이다.

HKW는 지난 17일(현지시각) 시상식을 열고 2025 국제문학상 최종 후보 6명 중 김혜순 시인을 수상자로 발표했다. 미국 소가 제스민 워드, 캐나다 소설가 세라 번스타인 등이 후보였다.

HKW의 국제문학상은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로, 2009년부터 그 해 독일어로 번역된 현대문학 가운데 뛰어난 작품에 수여한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7년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수여하는 상이다. 상금은 총 3만5000유로로, 작가에게 2만유로, 번역가에게 1만5000유로가 각각 주어진다. 이날 <죽음의 자서전>을 독일어로 옮긴 박술, 울리아나 볼프도 함께 수상의 영광을 나눴다.
김혜순 시집 <죽음의 자서전> 독일어 번역본.
김혜순 시집 <죽음의 자서전> 독일어 번역본.
김혜순 시인은 한국의 대표 여성 시인으로, 최근 해외에 작품이 소개되며 주요 문학상을 잇달아 받고 있다.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그는 1979년 <문학과지성>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또 다른 별에서> <당신의 첫> <날개 환상통>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등을 출간했다.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여성, 시하다> 등을 펴냈다. 서울예대 문예학부 명예교수다. 1989년부터 2021년 2월까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재직하며 수많은 작가를 길러냈다.

김혜순은 앞서 <죽음의 자서전> 영문판으로 2019년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문학상 '그리핀시문학상'을 받았다.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을 받을 당시 "김혜순의 시들은 여성의 몸에 실재하는 감정과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다정함과 격분이 공존하는 언어의 목소리로, 악몽과 어둠을 관통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적 황홀을 열어 보인다"는 극찬을 받았다. 2022년 영국 왕립문학협회 국제 작가로 선정됐고, 올해 4월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AAAS) 회원으로 선출됐다.

<죽음의 자서전>은 김혜순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으로, 국내에서는 2016년 출간됐다. 메르스, 세월호 등 사회적 비극을 애도하며 쓴 시 49편이 실렸다. 독일어 번역본은 박술, 울리아나 볼프 번역가가 독일어로 옮겼고, 올해 2월 피셔 출판사를 통해 현지 출간됐다.

국제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수상작에 대해 "불교의 사십구재 전통에 뿌리를 둔 여기 마흔아홉 편의 연작시를 통해 우리는 이 기적에 가까운 합창과 마주한다"며 "모든 인간의 연약하고 신비롭고 독특한 내면세계뿐 아니라 언어 너머 초월적인, 역설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사후세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이번 수상 배경에는 대산문화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출판 지원이 있었다. 박술, 울리아나 볼프 번역가는 대산문화재단의 2023년 번역지원을 받았다. 시집을 출간한 피셔 출판사 역시 2024년 대산문화재단의 출판지원을 받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