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 박제됐던 장식품, 문고판 펭귄 타고 대탈출
세계 최대 출판사 펭귄북스 90주년
"담배 한 갑 가격으로 훌륭한 책 내보자"
헤밍웨이·크리스티 문고판에 반응 폭발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 즐겨 읽어
노벨상 한강 작품도 영미권에 선보여
"담배 한 갑 가격으로 훌륭한 책 내보자"
헤밍웨이·크리스티 문고판에 반응 폭발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 즐겨 읽어
노벨상 한강 작품도 영미권에 선보여
세계 최대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의 전신 펭귄북스 출판사가 이달 창립 9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버지니아 울프, 오스카 와일드 등 대표 작가 90명의 작품을 새로운 표지로 선보이는 ‘펭귄 아카이브’ 90종을 최근 내놨다.
당시 책은 책장에 모셔두는 사치품이었다. 가죽으로 표지를 장식해 비싸고 무거웠다. 앨런은 펭귄북스를 세우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가벼운 ‘문고판’(paperback)으로 책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펭귄북스가 출판 역사상 처음 문고판을 세상에 선보인 건 아니다. 하지만 펭귄북스처럼 꾸준히 문고판을 내놓은 출판사는 없었다.
사람들은 조롱했다. <1984>를 쓴 ‘정치적 글쓰기의 대가’ 조지 오웰조차 “5실링을 가진 고객은 책은 한 권만 사고 남은 돈은 영화 티켓 등으로 낭비할 것”이라고 냉소했다. 서점들은 외면했다. 값싼 책은 팔아봤자 남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앨런은 오늘날 다이소처럼 저렴한 생필품을 파는 잡화점 ‘울워스’에서 펭귄북스 책을 팔기 시작했다. 자체 자판기까지 개발했다.
첫 책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애거사 크리스티의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등 10종을 냈다. 독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저렴하고 질 좋은 책’에 목말라 있던 독자들은 펭귄북스에 열광했다. 펭귄북스는 첫해에만 약 300만 권을 판매하며 책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펭귄북스가 지금의 자리로 도약한 데는 2차 세계대전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전쟁 와중에도 600권 가까운 책을 펴냈다. 교육 기회를 잃은 전쟁 세대와 군인들에게 펭귄북스의 책은 주머니 속의 교실이었다. 육군 전투복 무릎 언저리에 달린 주머니가 ‘펭귄 포켓’으로 불릴 정도였다.
펭귄북스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시리즈는 단연 ‘펭귄 클래식’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번
90년간 숱한 위기를 통과했다. 1970년 레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브랜드가 흔들렸고, 교육 출판 회사인 피어슨그룹에 인수됐다. 2000년대 전자책 시장이 커지면서 문고판의 강점을 전자책이 흡수해버렸다. 펭귄북스는 이에 2013년 독일계 랜덤하우스와 합병하며 세계 최대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로 재도약했다. 현재 영미권 출판시장 4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외신들은 “‘온라인 공룡’이 돼버린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대항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펭귄랜덤하우스에서는 1년에 1억5000종 이상의 책을 판매 중이다. 전 세계 직원은 1만 명이 넘는다. 250개의 임프린트를 보유하고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책.’ 펭귄북스의 출발점은 펭귄랜덤하우스가 인공지능(AI) 저작권 문제에 앞장서는 이유 중 하나다. 펭귄랜덤하우스는 2024년 주요 출판사 가운데 처음으로 종이책에 “AI 훈련을 목적으로 책을 사용하거나 복제할 수 없다”고 명시하기 시작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