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아트센터 X 서울재즈페스티벌 <팻 메시니: 드림 박스/문다이얼 투어> 포스터 / 출처. GS아트센터
GS아트센터 X 서울재즈페스티벌 <팻 메시니: 드림 박스/문다이얼 투어> 포스터 / 출처. GS아트센터
예술과 기술의 오묘한 만남. 혹자는 그 둘이 영원히 만나지 못할 평행선을 달리고 있노라 말하지만, 지난 5월 말 한국을 찾아온 팻 메시니의 내한공연에서 둘의 완벽한 합일을 목도할 수 있었다.

팻 메시니는 필자가 재즈에 입문하게끔 만들어준 뮤지션이다. 재즈의 'J'도 모르던 시절, 처음 그의 연주를 듣고 '이게 재즈인가?' 했다. 당시 알던 재즈는 루이 암스트롱 정도였기에 특이한 멜로디와 곡의 전개에 무척 생소한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생소한 것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법. 혼자 여행을 훌쩍 떠났을 당시 필자의 옆엔 언제나 팻 메시니의 음악이 있었고, 이제는 팻 메시니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소중한 순간들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듯한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익히 알려진 그의 음악답게 팻 메시니의 음악 속에 필자의 여행이 영원히 가둬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팻 메시니는 다른 뮤지션들보다도 필자에게 큰 의미가 있는 뮤지션이다. 그의 9년 만의 내한에 필자와 같은 재즈 애호가뿐 아니라 월드 뮤직 리스너, 기타 연주자들 등 많은 이들이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연장을 찾아온 듯 했다. 다만 지난번과 달리 팻 메시니 그룹이 아닌 솔로 공연으로서 찾아왔는데 2년간 연이어 발표한 <Dream Box> , <Moon Dial> 앨범에 대한 기념적인 솔로 연주가 이어지지 않을까 예상되었다.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하얗게 센 풍성한 머리칼을 흔들며 등장한 팻. 어쿠스틱 기타로 그의 유명한 수록곡들을 솔로 연주로 연이어 들려주곤 담담히 자신의 어릴 적부터의 삶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하였다. 다소 빛바랜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통해 단순히 음악 연주를 선보이는 공연이라기보단 팻 매시니 그 자체를 들려주는 이야기 시간 같기도 하였다.

아버지부터 대대로 트럼펫 연주를 이어왔지만 같이 트럼펫을 연주했던 형만큼은 절대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기타를 손에 잡았다는 그. 기타는 여섯개의 현을 갖고 있기에 하나의 악기로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등 무궁무진한 톤을 낼 수 있으며 메탈, 클래식, 재즈 등 한 악기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수 있다며 기타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이후 그는 기타에 대한 스스로의 철학을 즐기는 동시에 입증하는 시간을 이어갔다. 어쿠스틱 기타로 하늘하늘하고 잔잔한 연주를 하다가도 그에 이펙터를 더해서 강렬하고 어두운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또 기타의 잠재성은 장르와 분위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형태를 바꾸면서 더 혁신적으로 이어졌다. 일명 '피카소 기타'라고 불리는 넥이 여러 개 달린 42현 기타를 꺼내와서는 여러 가지 톤을 동시에 연주하며 정말 풍성하고 아름다운, 거의 기예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였다. 또 바리톤 기타를 통해 묵직한 사운드를 구현하기도 하고 여러 루프 스테이션과 이펙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솔로 연주이지만 한 치의 빈틈도, 지루함도 없는 가득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팻 메시니만의 '창작 실험 연주'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무대 세트가 대부분 큰 검은 천에 가려져 있었음에도 그의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사진을 절대 찍지 않기를 간곡히 협조 요청하였다. 아리송하고 칙칙한 무대 중간에서 공연 중반부까지는 팻 메시니 혼자 덩그러니 앉아 기타 한 대만 가지고 미니멀하게 공연을 이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타를 메고 일어서더니 베일이 벗겨졌다. 베이스 한 대, 기타 한 대가 공중에 매달려 있었고 팻 메시니는 각각을 번갈아 연주하여 루프를 쌓는 식으로 연주를 구성해내기 시작하였다.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그렇게 조금씩 쌓여가는 반주와 멜로디 속에서 뒤쪽의 베일이 벗겨지니 연주 리듬에 맞춰 불빛이 번뜩이고 작은 종과 스네어, 여러 가지 퍼커션 등이 자동으로 연주되면서 각각의 연주가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기계의 움직임만으로 모든 것이 자동 연주되는 이른바 '오케스트리온'이 펼쳐진 것이다. 기계들의 연주 사이로 팻은 자신만의 독주를 이어가며 모든 것을 아우르고 다스리는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감정이 담긴 팻의 연주와, 정밀하고 치밀한 기계 연주의 향연. 그 둘의 조합은 마치 우주에서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 듯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창작 방식은 혁신 그 자체였으며, 솔로지만 솔로가 아닌 공연이었다. 스스로가 만든 시스템을 통해 자가 복제에 복제를 더하여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해낸 것이다. 음악으로 모든 것을 실험하고 도전하며, 양극단에 있다 생각되는 과학과 예술이 종국에 만나 가장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 진풍경이 이어졌다. 그의 경이로운 창작에 관객석에서는 환호와 갈채, 심지어는 탄복이 새어 나왔고, 연이은 다섯 곡의 앙코르를 통해서 잊지 못할 밤을 선사하며 뜨거운 작별을 고하였다.

예술은 예술, 기술은 기술. 감성과 이성은 결코 섞이지 못할 영역이라 생각되지만, 그 두 가지를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엮어냈을 때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우주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팻은 스스로 보여주었다. 팻 메시니 그룹, 솔로 연주, 듀오나 트리오, 오케스트리온까지 그 누구보다도 다채롭고 새로운 연주와 도전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위대한 거장. 그의 이야기가 담길 또 다른 새로운 실험은 어떤 형태, 장르, 분위기로 만들어질지, 과연 어떤 팻 메시니로 그려질 것인지 기대해 본다.

민예원 '스튜디오 파도나무' 대표•작가

[ ♪팻 메시니 "Improvisation #2" - excerpt - from The Orchestrion 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