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한마디로 격동의 시대였다. 예술계 그중에서도 특히 문학계는 ‘참여’ 혹은 ‘순수’ 논쟁으로 들끓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보니 서정시는 차마 고개를 내밀기 어렵던 그때, 충북 청주 출생의 지역 국립대 국어교육과 출신 교사가 출간한 두 번째 시집이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시집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밀리언셀러…. 주인공인 도종환 시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창작과비평사에서 발행한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는 민족·민중문학의 이념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어서 참여문학 계열로 구분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반면, 1년여 만에 펴낸 『접시꽃 당신』은 지극히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작품성을 구현함으로써 상반된 형식적 전환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평론가적인 안목이 아니더라도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은 심각한 괴리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첫 시집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시인의 존재감이 두 번째 시집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무엇일까. 표제작 「접시꽃 당신」은 다음과 같이 비극적인 상황에서의 가슴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다.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중략>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중략>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중략>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접시꽃 / 사진출처. unsplash
1년 앞서 발행한 첫 번째 시집의 표제작으로 ‘단재(丹齊) 신채호(申菜浩) 선생(先生) 사당을 다녀오며’라는 부제가 달린 「고두미 마을에서」라는 작품에서 “뉘 알았으랴 쪽발이 발에 채이기 싫어/내 자란 집 구들장 밑 오그려 누워 지냈더니/오십 년 지난 물소리 비켜 돌아갈 줄을./눈녹이물에 뿌리 적신 진달래 창꽃들이/앞산에 붉게 돋아 이 나라 내려볼 때/이 땅에 누가 남아 내 살 네 살 썩 비어/고우나고운 핏덩어릴 줄줄줄 흘리련가”라고 읆었던 시인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속표제지 다음 면에 나오는 헌사를 보면 이 시집이 왜, 어떻게 쓰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앞서 간/아내 구수경의 영전에/못다 한 이 말들을 바칩니다.” 이런 헌사로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시인은 시집 말미의 ‘책 뒤에’라는 글에서 “오랫동안 참 여러 이웃께 미안합니다./제 개인의 가슴아픈 넋두리를 이제 무슨 여럿이서 할 소리라고 시집으로 엮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낯이 뜨거워집니다./어떤 한 사내가 앞서간 제 아낙에게 한 혼잣말이라고 보아주시고 너그러이 넘겨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고 있다. 도종환 시인은 훗날 『접시꽃 당신』을 쓰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서른둘 젊디젊은 날에 ‘접시꽃 당신’은 떠났습니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15 / 출처. 한겨레신문(2010.10.09)
결혼한 지 2년여,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어야 할 시기에 돌연 찾아온 병마에 시달리다 결국 유명을 달리한 아내를 향한 젊은 시인의 사부곡(思婦曲)은 이렇게 세상에 나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이 시집을 바탕으로 1988년에는 박철수 감독이 배우 이덕화와 이보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접시꽃 당신’을 개봉하여 제2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감독상을 비롯한 4관왕을 거머쥐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면서 도종환 시인은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말기에 들어서는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맡음으로써 정치인으로서의 면모까지 갖추게 된다. 이 또한 시집 『접시꽃 당신』의 덕을 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시집 최초의 밀리언셀러, 초판 1쇄본에만 보이는 흠결을 찾아서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시집 『접시꽃 당신』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접시꽃 당신’, 2부 ‘인차리’, 3부 ‘적하리의 봄’까지는 아내의 투병과 죽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시들로 채워져 있고, 그 밖의 작품들은 4부에 모여 있다. 그중에서 제3부의 세 번째 작품으로 실려 있는 ‘아홉 가지 기도’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눈 밝은 독자라면 이 시를 왜 살펴보라고 하는지 금세 알 수 있으리라. 초판 1쇄본 『접시꽃 당신』에 실려 있는 시 「아홉 가지 기도」는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나의 아픔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아픔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나의 절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절망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연약한 눈물을 뿌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남을 위해 우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죄와 허물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죄와 허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내 이웃의 평화를 위해서도 늘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모든 영혼을 위해 항상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용서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굳셈과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욱 바르게 행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이 시집이 발행된 이듬해인 1987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면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과 서정윤의 『홀로서기』가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해인 수녀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와 『민들레의 영토』 등 서정시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당시 소설작품으로는 『사람의 아들』, 『레테의 연가』, 『황제를 위하여』 등 이문열의 작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다. 교보문고 판매량으로만 보더라도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등 시집 9종이 종합 50위 안에 들며 서정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는 『접시꽃 당신』이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을 무렵이었던 1987년 3월 청하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이 시집 또한 표제작의 인기에 힘입어 1년여 만에 밀리언셀러가 됐다. “둘이 만나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로 시작하는 시 「홀로서기」는 1981년 서정윤 시인이 대구 영남대 재학시절 교지에 발표한 시로, 시집 출간 이전부터 중·고교생과 대학생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심지어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던 학용품은 물론 대학가 선술집 벽에도 「홀로서기」가 적혀 있었고, 라디오에서도 모든 프로그램에서 날마다 이 시를 낭송해 줄 정도였다. 이렇게 소문에 소문을 타고 시 「홀로서기」는 계속 번져 갔다. 급기야 ‘∼하기’라는 명사형으로 끝나는 모방 시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다 얼굴 없는 시인의 정체와 함께 시집이 발행되자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시집 『홀로서기』가 청소년과 대학생 등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면, 도종환의 시집 『접시꽃 당신』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렸던 셈이다.
그렇다면 앞서 살펴보자고 했던 시 「아홉 가지 기도」에서 보이는 ‘이상한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제목이 ‘아홉 가지 기도’이건만 시 본문 중에 나오는 기도는 아무리 세어보아도 ‘여덟 가지’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픔, 절망, 눈물, 죄와 허물, 마음의 평화, 영원한 안식, 용서, 굳셈과 용기 등 모두 여덟 가지를 위한 기도만 들어 있음에도 굳이 제목을 ‘아홉 가지 기도’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초판 1쇄 이후의 판본을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곧 당시 교정 과정에서 기도 하나가 빠진 채 조판(組版)된 것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1980년대 당시에 책을 만들려면 먼저 활자(活字)를 구비하고 있는 조판소를 통해 교정쇄를 받아 편집부에서 교정 및 교열 과정을 거쳤는데, 그때 원고와의 대조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 실수였던 셈이다. 그렇게 시집 『접시꽃 당신』 초판 1쇄본에 실린 시 「아홉 가지 기도」에서 빠진 부분은 세 번째 기도로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깊은 허무에 빠져 기도합니다 그러나 허무 옆에 바로 당신이 계심을 알게 하소서
빠진 시 구절처럼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실수 아닌 실수가 사실은 ‘초판 1쇄본’이 품은 매력이라고 할 수 있으니 굳이 시인이나 편집자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도종환 『접시꽃 당신』에 실려있는 시, '아홉 가지 기도' / 사진=필자 제공출판사와 시인, 그리고 구설수를 넘어
‘실천문학의 시집’ 37번째로 발행된 『접시꽃 당신』의 표지를 보면 ‘도종환 서정시집 접시꽃 당신’이라는 표제와 함께 물동이인 듯한 그 무엇을 머리에 인 여인의 모습을 담은 흑백의 판화가 바탕을 장식하고 있다.(다만 안타깝게도 누구의 작품인지 단서가 없다) 그리고 앞표지 날개에는 별다른 이미지나 장식 없이 하단에 활자로 시인을 소개하는 문구가 넉줄 있을 뿐이다.
도종환 서정시집 『접시꽃 당신』 표지 / 사진=필자 제공
뒤표지를 보면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도종환 시인의 우수에 찬 초상을 가운데에 두고 위에는 표제가, 아래에는 표제시가 아닌 「당신의 무덤가에」라는 시의 전문(全文)이 실려 있다. 아울러 뒤표지 날개에는 그때까지 발행된 ‘실천문학의 시집’ 1번부터 36번까지의 목록이 실려 있는데, ‘창비시선’이나 ‘문학과지성 시인선’과 달리 국내 시인의 창작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시집들을 출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좌] 도종환 서정시집『접시꽃 당신』뒤표지 [우] 도종환 서정시집『접시꽃 당신』 뒤표지 날개 / 사진=필자 제공
한편, 간기면을 보면 ‘펴낸이’ 곧 발행인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이문구(李文求, 1941~2003)’, 그 또한 작가로서 연작소설 『관촌수필』, 『우리 동네』 등 불후의 명작을 남긴 우리 문단의 거목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작가 이문구 선생이 실천문학사 대표를 맡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먼저 1980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군사독재 치하에서 대부분의 문예지가 강제로 폐간되거나 정간(停刊)을 당함으로써 모든 문예활동이 봉쇄되는 암울한 시기를 맞게 되었을 때 이문구, 고은, 박태순, 송기원, 이시영 등을 주축으로 한 양심적 문인, 화가, 건축가, 영화감독 등이 각자의 주머니를 털어 문예지를 창간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실천문학》이었다.
도종환 서정시집 『접시꽃 당신』 간기면 / 사진=필자 제공
창간호 표지에 보면 ‘역사에 던지는 목소리’라는 부제와 함께 ‘민중의 최전선에서 새 시대의 문학운동을 실천하는 부정기간행물(MOOK)’라고 표기해 놓은 것처럼 그 이름은 곧 “진실을 가리는 모든 부당함에 굴종하지 않는 문학의 존엄을 상징하는 것”과도 같았다. 시집 『접시꽃 당신』을 발행한 실천문학사는 바로 그 정신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출판사로, 현재의 인터넷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역사성을 보여준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출판사가 걸어온 길은 숱한 고난과 탄압의 역사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주체가 되어 발행한 무크지 『실천문학』은 첫 호부터 계엄사의 검열로 인해 무수히 삭제된 채 발행되었고, 1985년 이른바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인해 주간 송기원, 시인 윤재철·김진경이 구속당하고 《실천문학》은 강제 폐간의 비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오봉옥의 장시집 『붉은 산 검은 피』 출간에 따른 송기원 전 발행인의 구속과 오봉옥 시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 지금은 고인이 된 이문구 전 발행인의 불구속기소와 정지아의 소설 『빨치산의 딸』 출간에 따른 이석표 대표의 구속, 엄청난 세무사찰로 인해 『노동문학』의 자진 정간과 사옥 손실 등 헤아릴 수 없는 가시밭길 속에서 출범의 정신만은 잃지 않은 채 올곧은 자세를 견지해 왔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오히려 ‘사상, 표현, 출판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민예총을 비롯한 전 문인들의 목소리를 울려퍼지게 하였다.
그러면서 이어 적고 있거니와 “1986년 간행한 시집 『접시꽃 당신』 성공으로 사옥까지 마련했다”고 한다. 원래 화가를 꿈꾸었던 도종환 시인은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못해 국가에서 등록금 전액을 대주는 국립사범대를 선택했으며, 돈이 적게 들어갈 것 같은 학과를 골랐단다. 이후 사범대학을 졸업하고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의 한 고등학교로 발령받았으나 당시 시국 문제에 앞장서던 천주교 신부와 친하게 지내다 시골 학교로 좌천당한다. 군 전역 후인 1980년대 초반, 정기간행물이 모두 폐간돼 글을 발표할 매체가 없던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분단시대’라는 모임을 만들고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런 배경과 함께 당시 민예총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도종환 시인과 실천문학사의 인연은 곧 도종환 시인과 작가 이문구 선생의 인연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집 『접시꽃 당신』의 출간에 결정적 동기가 되었던 아내와의 사별 6년여 만에 도종환 시인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언론매체를 통해 도종환 시인의 재혼 소식이 알려지면서 부부의 애틋한 순정을 대변하던 시집 『접시꽃 당신』이 헌책방에 쏟아져 나왔으며, 동시에 실망한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의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가 변하는 것처럼 사람도 변하게 마련이고, 작가의 작품세계 또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순리임에야 애초의 『접시꽃 당신』 창작 동기까지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때 품었던 마음은 그 자체로서 순정에서 비롯된 순수한 그것이었음을 믿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을 향한 시인의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나 시집 『접시꽃 당신』을 회상하며 남긴 그의 다음과 같은 회한을 앞으로 보다 나은 세상 만들기를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키기를 바란다.
“서른둘 젊디젊은 날에 ‘접시꽃 당신’은 떠났습니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15 / 출처. 한겨레신문(2010.10.09)
너무도 오래 저문 들판에 서 있었습니다. 차가운 얼굴을 문지르며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떨어져 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이웃의 얼굴이 하나씩 둘씩 별처럼 떠오릅니다.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시작한 일이 더욱 크게 부끄러움을 불러들인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도종환 서정시집 『접시꽃 당신』, '책 뒤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