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영혼의 어두운 단면에 칼끝을

레오니드 안드레예프는 어렸을 때부터 기세가 대단한 실험가였다. 17세의 나이에 달리는 기차 밑(정확히는 선로 사이)에 누워 죽음이 두려운지 확인했다. 그는 20세기 초 러시아 표현주의와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확실히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작품들은 21세기 독자들에게 다시 흥미로워졌다. 생몰 연도를 확인해 보면, 그가 러시아 제국 말기를 통과하고서 혁명에 들어서자마자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제작으로 여기 소개하는 두 작품은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은세기를 장식하는 작가인 레오니드 안드레예프는 1871년 러시아 제국 오룔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독서에 관심을 보였고 하르트만과 쇼펜하우어의 작품을 좋아했는데, 특히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크게 영향받았다.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부친의 사망 이후 재정 상황이 나빠졌다. 수업료 미납으로 퇴학당한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다시 모스크바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니체 철학에 심취했고 삶의 무의미함과 개인의 가치를 고민했다. 1897년 기자 생활을 시작하는 동시에 가명으로 소설을 썼고 첫 단편 <바르가못과 가라스카>(1898) 이후 1901년 고리키가 이끄는 출판사 '즈나니예'가 그의 첫 소설집을 출판했다. 모든 잡지와 신문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레오니드 안드레예프 / 필자제공
레오니드 안드레예프 / 필자제공
혁명을 향한 희망과 증오

1904년 학생 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학생들에 대한 잔혹한 해산에 항의하며 당국에 호소하는 서명에 동참했고, 1년 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 회의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열리도록 허락한 혐의로 수감되었다. 자선가 사바 모로조프의 보석금으로 풀려났으나, 두 번째 체포를 두려워한 그는 임신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먼저 핀란드로 갔다가 거기서 독일로 다시 이주했다. 그는 고리키의 망명지인 카프리를 찾기도 했으나, 1907년 이후 혁명 자체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고 고리키의 혁명적 성향을 지닌 측근들로부터 떠났다.

돌아온 러시아에서 1917년 2월 혁명 이후 그는 반동 신문 '루스카야 볼랴'의 편집위원이었고 10월 혁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핀란드가 독립한 해에 그는 핀란드 영토가 된 지역에 살고 있었으므로 강제 이민을 당한 셈이었다. 볼셰비키 정권에 대한 비관주의와 증오로 가득 찬 소설 <사탄의 일기>를 시작했던 그는 1919년 친구의 장례식에서 심장 마비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는 고국에서 부당하게 잊힌 작가였고, 1956년 이래 작품들이 종종 재출간되었다.

안드레예프의 단호하고 표현주의적인 문학 언어는 혁명 전 러시아의 예술적, 지적 환경에서 광범위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안드레예프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는 고리키, 레리히, 레핀, 블록, 체호프 등 많은 이들에 의해 남겨졌다. 알렉산드르 블록이 <레오니드 안드레예프를 기리며>에서 썼듯이 안드레예프는 작품에서 “재앙이 가까이 있음”을, “공포가 문 앞에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왼쪽부터)레오니드 안드레예프와 막심 고리키 / 필자제공
(왼쪽부터)레오니드 안드레예프와 막심 고리키 / 필자제공
전쟁의 유령

중편 <붉은 웃음>(1904)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으며 러·일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작가의 반응이라 할 만하다. 1부에서는 익명의 포병 장교가 내레이션을 진행한다. 점차 광기의 심연 속으로 뛰어들면서 그는 상식과 완전히 모순되는, 전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묘사한다. 전쟁의 공포는 그가 ‘붉은 웃음’이라고 부르는 끔찍한 형태로 구체화 된다. 분노에 눈이 먼 같은 군대의 두 부대가 서로를 쏘는 전투에서 주인공은 두 다리를 잃고 집으로 보내진다. 돌아온 그는 정상적인 삶을 재개하려고 노력하나 어느 날 서재에 앉아 마침내 미쳐버리고 '꽃과 노래'에 대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2부에서는 화자의 형제가 내레이션을 대신하며, 주인공이 죽었고 그의 동생이 그를 대신하여 글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그의 형은 천재적인 작품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잉크 없는 펜으로 종이를 긁고 있었다는 것. 동생도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쳐야 한다”고 확신한 그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쟁은 계속되고, 반전 집회가 열리는 동안 도시에서 혼란이 시작된다. 그는 집으로 피신하여 형의 유령을 만나고, 그들은 창밖으로 사방에 나타나는 시체를 본다. 집에도 시체가 나타난다. 창밖에는 거대한 붉은 웃음의 형체가 솟아오른다.
<붉은 웃음> 표지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붉은 웃음> 표지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1904년 8월, 아내와 함께 얄타에 있을 때 그는 고리키에게 편지를 썼다.

“오늘 저녁 우리 다차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나 두 명의 터키인이 다쳤는데 한 명은 한쪽 눈이 찢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들 중 한 명이 옮겨지는 것을 보았는데, 몸이 온통 누더기 같았고 피투성이였는데 얼굴은 의식이 없는 채로 이상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근육이 왠지 수축한 것 같은 상태로 이 불쾌하고 붉은 미소가 흘러나왔습니다.”

전쟁의 공포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붉은 웃음>을 구상한 안드레예프는 집필 내내 광기에 사로잡힌 상태, 문자 그대로 환각에 빠졌다. 안드레예프는 9일 밤 내내 그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신념과 배신

안드레예프는 <가룟 유다>(1907)에서 복음서의 줄거리를 재해석하고 배신자 유다를 대신하여 이야기를 쓴다. 유다는 불안정하고 고통받는 젊은이이며 천성적으로 도발자다. 그는 스승인 예수를 사랑하지만, 고통스럽게, 그리고 역설적으로 미워한다. 유다는 돈이나 권력 때문이 아니라 실험을 위해 그리스도를 배반한다. 그는 스승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물론 예수는 배반에 대해 다 알고 있지만 여전히 유다를 막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나약하고 보잘것없이 그려지는 사람들은 예수의 명령에 불순종하지도 않으나 그를 보호하지도 않아 스승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도록 허락하고 마는 제자들이다.

20세기 초에 안드레예프는 볼셰비키를 적극적으로 도왔고 관련 문학계에서 활동했다. 막심 고리키는 그의 스승이자 가장 헌신적인 독자였다. 고리키는 이 ‘유다 복음’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 소설이 “많은 소음을 낼 것”이라 평가했다. 두 사람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다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드레예프는 소련을 떠났다. 안드레예프의 신비주의에 대한 갈망, 금기시되는 주제와 어두운 문제에 대한 숙고는 동시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나오는 예수와 빌라도의 대사는 <가룟 유다>의 자장 안에 있다.
<가룟 유다> 표지 / 필자제공
<가룟 유다> 표지 / 필자제공
유다의 구원 기획

유다의 머리와 얼굴에 대한 섬뜩한 묘사는 마치 여러 부분으로 나뉜 것처럼 반복적으로 구체화 되어 있다. 무질서, 가변성, 모순, 위험, 신비 등이 변주된다. 유다의 자기 자신과의 내적 투쟁, 사람들이 빛을 보게 될 것이고 십자가 처형이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그의 가르침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다의 눈에는 자신이 예수의 유일한 동료이자 충실한 제자이며 다른 제자들에게서는 예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고수하는 데서 오는 비겁함, 어리석음, 진정한 배반을 본다. 작가는 유다를 비참하고 탐욕스럽고 불쾌한 질투심의 수준에서 대단한 주인공의 높이로 끌어 올린다. 유다에게 십자가는 명백한 ‘저주의 상징’일 뿐이어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십자가에 달리도록 예수를 팔아넘긴) 그는 인민이 들고일어나 그 십자가를 뽑아 버리고 “자유롭게 된 예수를 대지의 정상으로 높이 올릴 것”을 상상하고 고대한다. 유다가 보기에 예수라는 탁월한 존재가 펼쳐야 할 구원의 역사는 압제를 기획하는 세력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인데, 미적대고 있는 예수나 그의 추종자들을 보다 못해 저들이 움직이도록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갔다고 볼 수 있다.

십자가상에서 죽어가는 예수 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들을 보며 유다는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물리적 시간의 종결은 죽음과 패배를 향하고 그 시간은 보편적임을 실감하며 유다는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예수가 죽자 그는 비로소 시간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 시체 위에서 유다는 ‘외로운 왕’이 되었다. 이제 유다가 예수를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하여 죽음을 파괴할 방식은 지상 왕국의 건설일 것이다. 예수에 대한 애도를 기반으로 한 왕국의 건설, 그 명예를 회복하여 기리는 나라를 세우는 일. 안드레예프가 볼셰비키 혁명을 거부한 것은 그것이 결과할 나라가 부실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사유의 혁명성

안드레예프의 주인공 가룟 유다가 자살을 택한다는 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키릴로프와 스타브로긴의 후예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오히려 키릴로프와 스타브로긴이 복음서의 가룟 유다의 후예라고 할 수도 있다. 안드레예프 자신의 말 대로 “신을 살해하고, 치욕스러운 죽음으로 신을 격하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극 중 유다의 자살은 자신의 기획이 실패했다고 판단한 데서 연유한다. 유다의 승리는 “끔찍하고”, 그래서 그의 운명은 잔인하다. 유다는 영혼의 모순, 고통과 구원, 운명을 거스르는 영웅적 행위 등 모든 징후를 가진 고전적인 비극적 영웅이다.

예수와 함께 지상을 방황하는 동안 유다는 예수의 냉담함에 고통스러웠지만, 사람들이 ‘배반’이라고 부르는 것을 성취한 후, 그는 자신이 메시아의 고통, 목적, 그리고 역할로서 그분과 분리할 수 없이 묶이고 동일시되는, 예수의 형제임을 느낀다. 유다는 “내가 너희에게 간다”고 중얼거린다. 이 모든 군중 가운데 두 사람만이 고통의 공동체로 격렬하게 묶여 있었는데, 한쪽은 조롱과 고통에 배신당한 자고 다른 쪽은 그를 배신한 자인 것이다. 둘 다 형제처럼 같은 고통의 잔을 마셨다. 안드레예프는 대담하게도, 예수와 유다가 인류에게 두 개의 동등한 희생을 바쳤으며, 그들의 동등한 크기는 그들의 창조 능력에 있어서 인간과 하나님을 동등하게 만든다고 선언하고 있다.

안드레예프는 유다가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적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작가가 유다를 두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말한 대로 ‘이적을 구하는 유대인’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이라 정의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그의 기록은 소설의 주인공 가룟 유다의 사고 구조가 작가 자신을 닮아있던 것으로 보이게 한다.

“본질적으로 나는 혁명가가 아니다. <…> 다른 한편으로, 나는 침묵 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며, 내 생각의 영역에서, 내 임무는, 내가 보기에, 혁명적이다. 나는 여전히 삶과 내가 찾는 신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일리야 레핀이 그린 레오니드 안드레예프(1904)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일리야 레핀이 그린 레오니드 안드레예프(1904)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