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플레이 콘서트는 공연이라기보다 경험이다. 스마트폰 좀비가 돼 스스로 좁혔던 시야를 일순간에 확장해 준다. 한 편의 아이맥스 서라운드 블록버스터 영화다. 손바닥의 네모 안에서 움직이는 주식 창의 숫자나 인플루언서의 몸짓 속에 세상이 있다고 믿었던 이들을 통렬히 배반하는 매직쇼이자 극적인 탈출극이다.

콜드플레이는 지난달 내한을 통해서 단군 이래 없던 신기록부터 세웠다.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이라는 한 장소에서 16일부터 25일까지 총 6회 공연으로 연인원 30만 명을 동원한 것이다. 해외 팝 슈퍼스타가 2, 3회 공연도 아니고 한국의 한 베뉴에서 6회 공연을 연 적은 없었다. 일산의 운동장은 태양의 서커스가 특설한 빅 탑 스테이지처럼 신기루가 돼 10일간 머물며 회당 5만의 관객 앞에 만화경을 펼쳐냈다.
콜드플레이 공연 / 사진출처. 한경DB
콜드플레이 공연 / 사진출처. 한경DB
이번 공연은 역시 콜드플레이가 왜 21세기 최고의 콘서트 밴드로 군림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무대였다. 필자가 2016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을 보고 난 뒤 ‘빛과 색채의 카니발’이란 제목의 리뷰 기사를 썼었는데 과연 그 카니발의 총 천연색은 9년이 지났는데도 빛이 바래거나 여려지기는커녕 반대로 더 명징하고 화려해졌다. 여러분은 콜드플레이 콘서트를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라 끝내 경험하게 된다.

그 ‘경험’은 여러 각도에서 중요하다. 콜드플레이 콘서트는 친환경 콘셉트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관객이 특수하게 제작된 플로어 위에서 뛰거나 자전거를 타면 전력이 생산되는 키네틱 플로어, 파워 바이크를 설치했다. 공연에 쓰이는 전력의 일부를 거기서 충당한다. 이들의 전매특허인 발광 팔찌 ‘자일로 밴드’는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졌다. 공연 뒤 관객이 자발적으로 반납하게 하되 나라별 수거율을 공개해 경쟁을 독려했다.
콜드플레이의 Mylo Xyloto Tour에서 쓰였던 자일로 밴드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콜드플레이의 Mylo Xyloto Tour에서 쓰였던 자일로 밴드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사실 환경, 자선, 기부 같은 키워드는 돈도 명예도 더 바랄 게 없는 슈퍼스타들에게 마지막 왕관이다. ‘좋은 이미지’를 씌워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그래서 저런 행보는 술책(gimmick)일 가능성도 크다. 테일러 스위프트를 보라. 선한 영향력을 내세우지만, 그의 자가용 비행기가 배출하는 천문학적 탄소량은 환경주의자들의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콜드플레이에게도 비슷한 관점을 적용할 수 있다. 지난달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팝 슈퍼스타들의 레지던스형 공연 트렌드의 빛과 그늘을 다뤘다. 콜드플레이, 레이디 가가, 비욘세 등이 예전만큼 ‘방방곡곡’ 투어하지 않는 대신 런던, 파리 같은 수도나 대도시에 장기간 체류하며 5회, 6회, 7회 공연하는 경향이 또렷해진다고 매체는 짚었다. 대규모 장비와 인원이 이동할 필요가 없으니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고 탄소 발자국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반면, 뒤집어 생각하면 그들은 가만히 있는 대신 수십만 명의 팬이 이동할 때 생기는 탄소 발자국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콜드플레이의 고양시 공연에도 한국의 다른 도시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러시아의 팬까지 결집했다.
콜드플레이 공연 / 사진출처. 한경DB
콜드플레이 공연 / 사진출처. 한경DB
그런데도 콜드플레이 콘서트가 ‘케이팝의 본산’인 대한민국에 던지는 물음표와 느낌표는 묵직하며 특별하다. 콜드플레이는 콘서트 응원봉 격인 ‘자일로 밴드’ 수만 개를 매번 무료로 나눠준다. 케이팝 아티스트나 기획사처럼 5만 원, 6만 원에 팔지 않는다. 콜드플레이는 CD와 LP도 진작 페트병을 재활용하고 자연 분해가 가능한 친환경 소재로 제작하고 있다.

케이팝 산업은 어떤가. CD에 랜덤 포토 카드나 사인회 응모권을 넣어 한 명이 많게는 수십, 수백 장씩 사고 버리고 싶게 만든다. 응원봉을 포함한 각종 굿즈를 제작해 공연 때마다 판촉한다. 케이팝의 반환경적 실태를 비판하는 세계 팬들의 자생적 단체인 ‘케이팝포플래닛’이 근년에 활동하며 가요기획사들 앞에서 시위도 벌이지만 이런 행태는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케이팝이 글로벌 붐을 일구고 주식시장에 진입하면서 되레 더 심해졌다. 당장 분기, 반기, 연간 매출을 책임지는 응원봉, 굿즈, CD의 과잉 판촉을, 기업 입장에서 그만두기란 숫자의 경제학으로 보면 매우 힘들긴 할 것이다. (반환경이라는 비판을) 맞으면서도 그게 핵 주먹이 아니라 잽이라고 느낀다면 버티는 게 그들에게는 상책일 수도 있다.

콜드플레이에게서 배울 것은 그래서 적잖다. 케이팝이 왜 특별한가. 케이팝은 어떻게 해서 세계인을 매혹했나. 아티스트와 팬의 소통이 끈끈하며 팬은 아티스트의 성장에 직접 참여하고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그 감각 때문 아니었다. 친구의 피드를 보며 우울해하기 쉬운 SNS 시대에, 누군가(그것도 팝 아티스트)와 연결되고 심지어 그들을 함께 키워낸다는 긍정적 느낌 아니었다.
콜드플레이 공연 / 사진. ⓒAnna Lee
콜드플레이 공연 / 사진. ⓒAnna Lee
적극적 참여, 동반 성장, 공동의 경험 같은 것들의 집합체이자 놀라운 장(場)이 다름 아닌 케이팝이라면, 콜드플레이 콘서트야말로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 (해외 작곡가의 곡만 레퍼런스로 삼을 게 아니라 말이다) 내가 힘차게 뛰고 발을 굴러 만들어낸 전력이 내 최애의 무대를 비추는 휘황한 빛이 된다면, 응원봉을 사는 대신 내가 잠시 착용한 팔찌가 연대한 세계 팬의 손목에 다시 채워져 환경 보전에도 일조한다면…. 케이팝의 젊음, 케이팝의 반짝거림, 케이팝의 상상력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콜드플레이보다 더 획기적이며 신박한 참여형 친환경 월드 투어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팬들의 연대, 아티스트의 공감, 기획사들의 놀라운 기획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적잖은 해외 케이팝 팬은 케이팝이 영미권 팝보다 착하고 순수하며 건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좋아한다고들 한다. 이제 환경이 남았다. 케이팝포플래닛이 말하듯, 죽어가는 지구에 케이팝은 없으므로. 더 즐겁게, 더 건강하게, 더 끈끈하게 함께할 미래는 ‘우리 아이(돌)’처럼 저 앞에서 손짓하고 있다.

임희윤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