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지체할 생각 없이 신속히 자고 있던 용사를 잡아 (....) 살덩어리째 삼켜버렸다”
작자 미상의 고대 영어로 쓰인 서사시 <베오울프> 중 일부다. 괴물 거인인 그렌델은 마을을 습격하고 인간을 잡아먹는다. 몸이란 때로 공격적이고 방어적이다. 인간의 신체를 다부지게 또는 약하게 드러내는 근현대의 회화가 있다. 화가 문신과 강철규의 캔버스 속 몸의 움직임을 따라가 본다.
다부진 신체, 생동하는 노동의 흔적
문신 <고기잡이>(1948), 캔버스에 유화물감, 27.5 x 103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 남자가 있다. 흐린 날씨 때문일까. 선박 노동자인 그의 무표정이 짙어진다. 움직일 때마다 다부진 근육이 움틀거린다. 영화 <마틴에덴> 속 한 장면이다. 상류층 여성인 엘레나와의 첫 만남에 마음을 빼앗기고 선원 마틴은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내 이루어내고 세상 속에서 우뚝 선다. 2020년 가을과 겨울 사이 개봉한 영화 속 주인공과 누군가가 디졸브 된다. '노동자 출신의 체격이 좋은 한국 작가가 있었는데….' 잠시 뜸을 들여 기억해 냈다. 문신이다. 어떤 그림이었을까. 마틴 같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었는데. 알아내려고 애를 쓰다 생각을 멈췄다. 미뤄두기로 했다. 직접 볼 날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싶었기에.
반가웠다. 2022년 문신의 100주년 회고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남겨둔 숙제를 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해 가을, 《문신(文信) : 우주를 향하여》 전을 보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향했다. 찾아냈다. 첫 전시실 두 번째 작품이다. 숨이 차오른다. 보는 순간 턱하고. 건장한 남성들은 몸을 맞대었다. 힘겨워 보인다. 문신의 <고기잡이>(1948)였다. 힘줄 자국이 내솟았다. 거친 마티에르가 말해준다. 물살과의 줄다리기 강도를. 바짝 힘이 들어간다. 뒷목덜미가 저려온다.
그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마산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26살 젊은이였다. 분명하게 알아챘다. 회고전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문신에게 세계적 명성을 선사한 추상 조각들이 무대의 중앙을 차지했다. '찰칵' 소리와 "너무 멋지다"란 들뜬 음성들이 뒤섞인다. 다음 동선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흐름에 동조했다. 그가 빚은 조각이 매력적임을 인정한다. 다만 마음이 뒤돌아선다. 자꾸만. 어둔 조명이 비추는 <고기잡이> 속 사투의 장면이 되살아난다. 그 격렬한 동세가. 근대 미술 수업 때마다 궁금했다. 같은 시기 근대의 일본 유학파 화가들의 그림과 달라 보인다. 문신 역시 유학파였으나 아카데미즘에 경도되지도, 당시 유행하던 최신 모더니즘의 기류를 그대로 따르지도 않았다.
'조각가 문신' 작가인 그를 지칭하는 명제다. 처음은 회화였다. 일본 규슈(九州)의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인 광부였고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5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으로 왔다. 장르를 훌쩍 가로지르는 삶은 태생부터 예견되었을까. 바다를 품은 마산은 그를 품었다. 모래를 만지며 성을 쌓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그림 같은 삶이었다. 행복했으리라. 너무 짧았더라도. 부모는 아이와 함께하기보다 각자의 방식대로 머무르고 떠나고를 반복했다. 친척들의 손에 커야 했다. 어느 날이었다. 간판 그림을 거는 장면을 목격했다. 과일이 탐스럽게 그려져 있다. 소년은 직감했다. 지금의 떨림은 멈추는 게 아님을.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들른 숙부의 잡화점에서였다. 간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곧 소문이 났다. 예술가의 탄생이다. 새삼 깨닫는다. 나쁜 일과 좋은 일의 경계는 흐릿하고 결여의 뒷면에는 가능성이 존재함을.
더 넓은 세상을 꿈꿨다. 일본으로 밀항했다. 1938년 그의 나이, 16살 때였다. 도쿄 일본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웠다. 신이 났다. 외광파, 야수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화풍까지 모더니즘의 최신 경향을 익혔다. 뚫고 나아가는 날들이었다. 공모전 '이과전(二科展)' 낙선에도 기죽지 않았다. "수상작들의 수준이 형편없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예술가의 자아를 본다. 문신은 학업 중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병원 조수부터 간판 작업, 목공까지 그의 몸은 눕는 법이 없었다. 부단하게 움직였다. "시내에 공습경보가 내리고 머리 위로 폭탄이 터져도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청춘의 고백이다. <자화상>(1943)에는 그 시절의 문신이 있다. 흐트러짐 없는 곧게 뻗은 자세의 20대 청년이 있다. 함께 고개를 들어본다. 움츠러들었던 등이 서서히 펴진다.
살아있음을 토해낸다. 발 디딘 어디에서든지. <어부>(1946) 속 줄을 잡고 있는 손들이 팽창한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게 된다. 유학 후 돌아온 고향 마산에서 제작한 목조각 작품이다. "불가분한 유기적인 생명을 지속시키는 작품에 놀랐다." 당대 최고의 평론가였던 김용준의 말이다. 1948년 동화 화랑에서 열린 문신의 개인전에 대해서다. <야전병원>(1950) 속 사람들은 전쟁의 현장에서도 담대하다. 몸을 세우고 있다. 곧고 바르게. 문신은 알았던 것일까. 두려움을 막을 수는 없다. 행동은 선택할 수 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변화와 전향이라고 평한다. 문신이 1961년 도불 후 조각가의 길을 걸어간 것에 대하여. 맞지만 틀리다. 생계를 위한 노동이었다. 프랑스 파리 외곽의 라브넬에서 고성을 복원했다. 입체 작업에 눈을 떴다. 낡았던 흔적이 지워진다. 숨을 불어넣듯이. 기울던 축이 수직을 맞추었다. 고통 속에 희열을 맞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침내 시메트리(Symmetry, 좌우균제)의 탄생이다. 문신을 세계적 예술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고유의 추상 양식이다. 13m 높이의 <태양의 인간>을 세웠다. 프랑스 항구도시 발카레스에 우뚝 솟아있다. 평생 눕지 않았던 문신의 분신이다.
"문신의 작품에는 철골의 의지력과 신체의 강인함(...) 윤리도 내포되어 있다." 프랑스의 평론가 자크 도판느의 찬사다. 믿게 된다. 공간을 가로지르고 먼 곳에서도 내연(內燃)하는 예술의 흔적을. <고기잡이> 그림은 나무 액자로 둘러싸여 있다. 문신이 직접 제작했다. 그물을 끌며 분투하는 청년들을 감싸고 있다. 양감을 느끼고 싶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싶기에. 매일을 살아가는 나의 몸이 귀하게 느껴진다. 우주를 향해 말해본다. 문신이 이제는 편히 누워있기를. 곧게 허리를 편다.
이윽고 분열하는 몸
강철규 <데우스 엑스 마키나>(2025), 캔버스에 유채, 291 × 218cm, 강철규 제공
긴장이란 단어가 고마울 때가 있다. 가끔씩은. 맞닥뜨릴 일을 조금은 예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점심시간 직장 옆 금호미술관으로 향했다. 《2025 금호영아티스트》 전시 1부가 열리고 있다. 3층부터 보기로 결정했다. '본 전시의 일부 작품에는 신체 노출 및 자극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철규 《투사일지 𝘗𝘳𝘰𝘫𝘦𝘤𝘵𝘪𝘰𝘯 𝘕𝘰𝘵𝘦》 전시장 앞에 놓인 팻말이었다. 질겁했다. 들어서자마자. 약간의 과장을 더해. 경고문을 가벼이 여기고 방심한 탓이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담은 회화들이다. 거리를 두고 봐도 살짝 겁이 났다. 인간일 듯 괴물일 듯한 형상들이 말을 걸어온다.
부서지고 절단된 형상들을 지나야만 했다. 나의 마음도 조금씩 이지러졌다. 첫 번째 전시 장소를 지나 두 번째 공간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정면에 하나의 그림이 있다. 다음 작품들에 대한 예고일까. 새가 날고 있다. 푸르고 파랗다. 마음을 쉬려고 동선을 어겨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2025) 앞에 섰다. 흠칫 놀랐다. 또다시. 다가섰다가 뒷걸음질을 친다. 새인 줄 알았는데 틀렸다. 한 남자가 날고 있다. 날개를 펼쳤다. 반인반수다. 풍경은 빛바랜 사진 속 추억처럼 안온하지 않다. 곰이 이를 드러내고 포효한다. 자신의 몸을 한껏 뽐내듯 서 있다. 기가 죽는다. 그 아래 주저앉은 사람이 있다. 숨은그림찾기의 한 장면처럼 작고 슬그머니. 보지 않아도 알 거 같다. 겁에 질려 있으리라. 강철규에게 묻고 싶다. '달아나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 몸을 바스러뜨리고 싶은 것인지?’ 곰의 발밑에 내려앉은 이를 클로즈업 해본다. 늘어진 옷자락은 휘어진 뿔이었다. 가로세로 2m가 넘는 대형작이다. 아직 만나야 할 등장인물들이 적지 않다. 보고 싶은데 보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 동화(童話)에 첫 배신(?)을 당한 기억은 굳이 더듬지 않아도 될 만큼 선명하다. '한스 나의 고슴도치' 책의 첫 장 목차 속 단편 목록에 들떴다. 서슴없이 집어 들었다. 과천 시내 상가 내 서점에서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수업을 마치고 들르던 곳이었다. "아이를 갖고 싶어 고슴도치라도 좋겠어"라는 문장을 읽어버렸다. '설마'하는 조마조마함은 다음 문단을 읽는 순간 ‘아'하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상반신은 고슴도치이고 아래는 인간의 몸이었다. 한스의 탄생이다. 반인반수다. 부모는 한스를 외면하고 돌보지 않았다. 소망은 섣부르고 책임에는 얄팍하다. 인간은 왜 이토록 유약할까. 벽에 기대선 다리가 휘청거렸다. 성장기 10대 소녀의 작은 몸이 기울어졌다. 이지러지듯이. 한스가 결국 동물들과 함께 집을 떠날 때, 그저 울고 싶어졌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속 형상들의 신체는 다부지다. 심히 구부러지고 기이하게 늘어져 있을지언정. '상상과 허구일 뿐'이라고 되뇌어본다. 캔버스 속 모티프들을 읽어내기가 두려워서였다. 중앙에 우뚝 솟은 막대는 짐승의 머리에 꽂혔다. 누구의 공격일까. 알 수 없다. 사방으로 삐죽한 뿔을 가진 이 생명체는 과연 죽음을 맞이했을까. 모르겠다. 알고 싶은 마음에 눈길을 옆으로 옮겨본다. 한 공간에 있는 생명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무표정하다. 곁눈질조차 하지 않는다. 스스로 분열하고 있을 뿐이다. 두 개의 몸으로 갈라진 인간이 답한다. "마음을 나눠줄 여유는 없어." 싸늘함에 몸이 식는다. 늘어나는 얼굴의 반인반수는 귀가 보이지 않는다. 듣지 않겠다는 신호일까. 사람의 머리를 가진 새가 그 옆에서 소리친다.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모르지 않는다. 세상은 나의 서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 비정함을 맞이할 때마다 고개를 떨어뜨린다. 등이 굽는다. 숲속 중앙 짐승 뿔 위에 겨우 서 있는 사람처럼. 위태롭다. 구부러지고 휘었다. 몸을 지탱할 여력이 없다.
"유약함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의지를 담아냈다." 강철규는 자주 말했다. 작업에 대한 설명이다. 《투사일지》의 속뜻을 읽어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불안은 쉬이 잠재워지지 않는다. 애쓸수록 마음이 조각나 분열한다. 그 절망의 순간을 알고 있다. '비현실적이고 기이하다.' 강철규의 회화에 대한 주된 비평이다. 다르게 읽힌다. '지극히 현실적이다'라고 말하리라. 왜곡되고 변형된 몸들에 다가갔다. 제멋대로 뻗쳐있는 내 속의 감정들이 보인다. 창을 든 사냥꾼에게 투사해본다. 그가 대놓고 무례한 누군가를 대신 무찔러주기를 바라면서. 내 안의 괴물도 함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속 숲의 이야기는 이토록 투명하고 솔직하다.
연약한 고백을 해보려 한다. '약하다는 자책에서 벗어나기.' 내 평생의 숙제이자 기도다. 갑자기 신이 공중에서 나타나 위급하고 복잡한 사건을 해결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정의다. 강철규의 회화 속 기묘한 인물들 옆에 서본다. 함께 바라본다. 몸을 가누기 힘든 고된 하루를 보낸 그런 날에는.
거친 나날 속에 몸을 세우다
오래도록 곁에 머물고 싶었는데 떨어져 버렸다. 지켜내고 싶으나 멀어졌다. 삶의 여정에서 ‘서로’라는 관계는 복잡하다. 내 몸이 평생 나와 함께라는 사실만이 분명할 뿐. 그러니 울고 싶은 날에도 구겨지지 말기를. 어깨를 펴고 몸을 세운다. 몸짓한다. 살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