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의 시각] 모두를 괴롭히는 '괴롭힘 금지법'
다음달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만 5년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2018년 유명 웹하드업체 회장의 엽기적인 갑질 행각이 여론의 공분을 사면서 이른바 ‘갑질 금지법’으로 그해 말 입법됐다. 이듬해 7월 시행된 괴롭힘 금지법은 입법 취지대로 강제 회식이나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냐’는 식의 폭언 등 일터에서의 갑질을 상당 부분 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순기능을 뒤덮을 정도의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부작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 없이 나쁜 사장과 상사를 혼내줘야 한다는 분위기에 휩쓸린 전형적인 부실 입법이라는 지적이다.

일단 신고부터 해보라는 법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지위·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어 76조의3은 괴롭힘 발생 시 누구든지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에게는 조사 의무와 행위자 조치 및 피해자 보호 의무가 부과되며, 혹여 피해자에 대해 불이익 처우를 하면 형사처벌까지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단 신고부터 하면 뒷감당은 사용자가 하는 구조다.

이렇다 보니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에 진정·접수된 사건 수가 폭증하고 있다. 2019년 2130건에서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 8976건에 이어 지난해에는 1만 건을 넘어섰다. ‘괴롭힘을 당했다’는 신고는 급증했지만, 신고 사건이 실제 검찰로 넘어가 기소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취하, 화해 종결되거나 법 위반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난다. 고용부에 따르면 ‘부장이 나를 보는 시선이 차가워요’ ‘10분 일찍 출근해 업무 준비하래요’ 등의 신고부터 자신의 비위를 덮기 위한 신고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사업주는 거의 무방비

‘아랫사람 괴롭히지 말라’는 취지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누군가의 신고로 또 다른 누군가가 징계를 받거나 회사를 떠나고, 나아가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는 것이라면 괴롭힘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현행법에는 ‘업무상 적정 범위’ ‘정신적 고통’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상사가 욱해서 한 번만 폭언을 해도 괴롭힘이 되는지, 그런 행위가 반복적이어야 하는지는 오로지 근로감독관의 경험과 판단에 달려 있다.

황당하게도 제척기간조차 없다. 수년간 잘 지내다가 한번 수가 틀리면 ‘몇 년 전에 괴롭힘당했다’고 신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용자에게 의무만 있고 권한은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근로감독관이 일단 괴롭힘이라고 판단하면 사업주는 그에 대해 다퉈볼 수 있는 절차가 없고, 누군가를 징계하는 종착역까지 내릴 수가 없다. 괴롭힘 금지법의 진짜 피해자는 사업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근로감독관들도 고충을 호소한다. 괴롭힘 신고 사건이 들어오면 서로 맡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정부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노동위원회로 넘기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로 판단 주체만 넘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법 제도 정비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