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유럽 휩쓰는 反이민
지난 5월 1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중심지 콜론 광장에서는 국제 인권·환경 운동단체인 아바즈의 회원들이 이색 시위를 벌였다. 영화 ‘헤이트풀(hateful) 8’을 패러디해 “헤이트풀 5(혐오스러운 다섯)를 물리치자”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마스크로 유럽의 유명 정치인 다섯 명을 풍자했다. 그 다섯 명은 유럽 극우 정치인의 대명사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전 대표,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폴란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전 폴란드 총리, 프랑코 정권 이후 근 50년 만에 스페인 최대 극우 정당에 오른 복스의 지도자 산티아고 아바스칼, ‘헝가리의 트럼프’ 오르반 빅토르 총리, ‘여자 무솔리니’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다. 이날 시위는 6월 9일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에서 ‘극우에 대항해 단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시위 참가자들이 우려한 대로였다. 이번 유럽 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약진하며 거센 정치적 후폭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출구조사에서 국민연합이 여당인 르네상스당을 두 배가량 앞서는 것으로 나오자 27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 해산 카드를 던졌다. 독일에서는 나치 옹호 발언을 서슴지 않는 ‘독일을 위한 대안’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올라프 숄츠 정권에 치명상을 입혔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반난민·반이민 문제였다. 극우 정당들은 ‘이민 반대’와 ‘난민 추방’ 등 국수주의 슬로건으로 표심을 샀다. 유럽 유권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살림살이가 빠듯해지자 순혈주의에 더 기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회를 우리와 남으로 나누는 이분법과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이 내 몫을 빼앗아 간다는 갈라치기 논리가 먹혀들고 있다.

‘트럼프 현상’이 그렇듯 세계는 탈가치, 탈진실의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 인권, 약자 배려, 다양성 등 전통의 가치관이 곤궁한 삶의 무게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게 포퓰리즘이다. 적대와 혐오의 사회 갈등을 푸는 것은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지구촌의 최대 공통 과제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