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영국의 르완다 플랜
영국 국민들이 2016년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데엔 이민자 문제도 적잖게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들어 동유럽 국가들이 EU에 대거 가입하면서 영국에도 동유럽 출신 이민자가 크게 늘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들이 경제활동에 기여하는 것 없이 사회보장 혜택을 지나치게 누린다고 공격했다. 여기에 프랑스와 독일 등이 겪고 있는 난민 문제가 영국에도 들이닥칠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국경을 닫았는데도 영국행 불법 이민자는 2018년 299명에서 2022년 4만5000명으로 급증했다. 주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서유럽까지 온 다음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바다를 건넌 사람들이었다.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가 2022년 4월 불법 이주민 강제 이송 구상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구상에 연결된 국가가 아프리카의 르완다다. 1994년 종족 간 내전으로 80만 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한 나라다. 이후 집권한 폴 카가메 대통령은 대학살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한때 지배국이던 프랑스를 멀리하고 친영 노선을 펼쳤다. 2009년엔 영연방에도 가입했다.

르완다는 불법 이민자를 받아주고 영국은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난민이 거래 대상이 된 첫 사례인 듯싶다. 영국 정부는 착수금으로 3억7000만파운드를 주고 이후 이주민 1인당 2만파운드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 돈을 모두 합하면 르완다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른다. 영국 인권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이르면 7월 150명 정도의 이민자가 르완다로 보내질 전망이다.

이탈리아도 제3국에 난민센터를 두고 난민들을 바로 보내기로 했다. 장소는 아드리아해 건너편 알바니아다. 이탈리아는 대가로 1650만유로(약 244억원)를 지급하고 알바니아의 숙원인 EU 가입을 지원하기로 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난민 오프쇼어링’을 한 셈이다. 먹고 살기 위해 바다와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을 강제로 내쫓는 현실이 영 개운치 않지만 현지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불편과 불안이 이만저만 크지 않아 섣불리 인권 문제를 논하기도 어렵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