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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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중국 대신 미국과 가까운 아메리카 지역에 생산 시설을 마련하는 ‘니어쇼어링’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세계 IT 부품 공급업계를 꽉 잡고 있는 대만 부품사들의 경우,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중국 대신 멕시코에 생산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미국 대형 기술 기업들이 자신의 제조 파트너사들에 멕시코 지역에서 생산을 강화하라는 압박을 넣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멕시코에 투자 늘리는 대만

3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 최대 IT 제품 위탁 생산업체인 대만의 폭스콘사는 지난 4년 동안 멕시코에 약 6억9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지난 2월에는 AI 서버용 부품 생산을 늘리기 위해 약 2700만 달러를 들여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 주에 있는 토지를 매입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AI 서버용 부품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미국 대형 기술기업으로 공급될 예정이다.

폭스콘 이외에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멕시코로 이동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현재 멕시코에는 약 300개의 대만 기업이 진출했고 7만명이 근무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멕시코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양국의 무역 규모는 150억달러를 넘겼다. 페가트론, 위스트론, 콴타, 컴팔, 인벤텍 등 대만 기업들은 미국 텍사스주와 인접한 시우다드 후아레스에 생산 거점을 만들었다. 아치 첸 인벤텍 멕시코 지역 매니저는 “미국의 한 대형 AI 기술 기업은 처음에는 부품을 미국에서 생산해달라고 요청했다가 멕시코가 유망하다고 합의해 멕시코에서 생산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 IT기업은 생산 거점을 최대한 본토 근처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컴퓨터, 저장 시스템, 냉각 장치, 연결 부품 등 IT 기기 생산 및 데이터 센터 구축에 필요한 수많은 부품을 가까이에 둠으로써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15년 전 스마트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 스마트폰과 관련 부품의 핵심 제조 시설이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됐고 이후 몇 년간 미국은 '공급망'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WSJ은 분석했다.
사진=블룸버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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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은 “델, HPE 등 미국의 주요 서버 제조업체들은 공급업체들에 동남아시아와 멕시코로 생산 시설을 옮겨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도록 요청했다”고 전했다.

○무역긴장에 멕시코는 新 생산허브로

이 과정에서 멕시코는 새로운 생산 기지로 부상했다. 미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다는 지리적 이점에 더해, 지난 2020년에는 자유무역협정(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AC)을 체결하기도 했다. 제임스 황 대만 대외무역발전협회 회장은 “북미 국가들은 가능한 아시아산 부품을 사용하기보다는 아메리카산으로 대체하기를 원한다”며 “멕시코는 USMCA의 가장 중요한 제조 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멕시코의 역할은 확대될 전망이다. 멕시코는 세계 50개국과 14개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아시아, 유럽,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멕시코로 생산 시설을 이전해 세계 5위의 자동차 수출국으로 올라왔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상품 수입에서 중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3.9%로 2015년(21.5%)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멕시코는 점유율이 2%포인트 상승해 15.4%로 1위를 차지했다.

다만 불안한 치안과 낮은 근로 의지는 생산 허브로 거듭나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WSJ은 “일부 대만 관리자들에 따르면 멕시코 갱단이 장비를 약탈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설 보안업체를 쓰고 있고, 멕시코 근로자들은 중국 근로자들 대비 초과 근무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