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만에 만나는 '백제의 미소', 잊힌 여성들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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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불교미술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한중일 여성들의 삶과 내면 조명
국내외 불교미술 최고걸작 92점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도 출품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한중일 여성들의 삶과 내면 조명
국내외 불교미술 최고걸작 92점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도 출품

이름 없는 한·중·일 여성들의 이 같은 강렬한 염원이 가득 담긴 걸작들이 지금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 나와 있다. 동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불교미술을 통해 조망한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열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중·일에서 여성은 가장 큰 불교미술의 후원자였다. 이승혜 호암미술관 책임연구원은 “불교미술 작품들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과거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훌륭한 창”이라고 설명했다. 불교미술을 통해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전시 콘셉트는 사상 처음이다.
신선한 주제만큼이나 주목할만한 건 ‘블록버스터급’ 규모와 출품작 수준이다. 하나하나가 각국이 소장한 주요 문화재다. 호암미술관은 리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 9곳의 국보 1건과 보물 10건 등 40건,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독일 쾰른 동아시아 미술관 등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유물 52건을 빌려왔다. 92건 중 절반 이상인 47건은 한국에서 처음 전시되는 작품. 올해 열리는 고미술 전시 중 단연 압도적이다.
95년만에 만나는 ‘백제의 미소’
전시작들의 시대는 백제시대인 8세기 무렵부터 대한제국이 있었던 20세기 초까지를 아우른다. 작품이 제작된 곳도 고려 등 한반도는 물론 원나라와 청나라, 일본 등으로 다양하다. 이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건 7세기 백제에서 만든 26.7cm짜리 불상 ‘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1907년 충남 부여에서 한 농부가 발견한 이 불상은 1922년 일본인 수집가에게 팔려 1929년 전시를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모습을 감췄다.
일본 혼가쿠지가 소장 중인 15세기 조선 불화 ‘석가 탄생도’와 독일 쾰른 동아시아 미술관 소장 ‘석가 출가도’의 만남도 주목할 만하다. 원래 한 작품이었던 이 그림은 임진왜란 때 약탈된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찢어져 흩어졌다. 한반도를 떠난 후 두 작품이 다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연구원은 “기구한 운명을 겪은 작품이 고국에서 재회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석가탄생도는 5월 5일까지 전시 후 일본으로 돌아간다.


진흙 속 연꽃처럼
여성도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는가. 불교가 탄생할 때만 해도 그 대답은 ‘아니오’였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고대 인도가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이다. 전시 1부에서는 ‘여성의 몸은 깨끗하지 않다’는 인식이 담긴 일본의 회화 ‘구상시회권’ 등을 만날 수 있다.

남성으로 여겨졌던 관음보살이 여성으로 인식되는 과정을 담은 관음보살 조각품 여럿, 부정하다고 여겨진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부처를 표현한 일본의 중요문화재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도 인상적이다. 이 연구원은 “여성은 부처가 될 수 없는 몸이라는 인식을 부정하기 위해 일부러 머리카락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라는 전시 제목은 이렇게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살고자 했던 여성들의 흔적과 내면을 조명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원과 함께 ‘금상첨화’
불교미술에 관심 없는 관람객이라도 시간을 내 보러 갈만한 수준 높은 전시다. 그런 점에서 호암미술관의 약점으로 꼽혔던 교통 문제가 해결된 건 미술 애호가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미술관은 전시 기간 중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두 차례씩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사이를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주차 공간도 추가로 500여대 규모를 늘렸다.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용인=성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