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느 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파리 최고의 명당에 위치한 레스토랑 투르 다르장(La Tour d’Argent)은 그 자체로 프랑스 미식의 역사이기도 하다. 1582년에 창업하여 지금까지 전통의 조리법에 충실한 맛과 품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대로 프랑스 왕실의 단골집이었으며, 지금도 세계 각국의 셀러브리티들이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파리 미식의 영원한 랜드마크다.

여기서 탄생한 메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로시니 스테이크(Tournedos Rossini)다. 이탈리아 최고의 희극 오페라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실제로 로시니가 개발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미식과 탐식의 경계에 선 음식이고, 심지어 누구에게는 괴식(怪食)일 수도 있다. 놀랍도록 진한 풍미와 엄청난 칼로리를 동시에 자랑하는데,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법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La Tour d’Argent
La Tour d’Argent
우선 최고급 안심인 필레 미뇽을 스테이크로 구워낸다. 그 위에 진한 풍미의 푸아그라를 얹고 마무리로는 ‘버섯의 황제’라 불리는 송로버섯을 슬라이스 해 곁들인다. 포르투갈 마데이라산 와인을 장시간 졸여 만든 특제 소스를 살짝 부어주면 드디어 완성이다. 진한 재료 위에 더 진득하고 무거운 재료를 얹고는, 다시 거기에 더욱 더 강렬한 풍미의 그 무엇을 가미하는 일종의 ‘옥상옥(屋上屋)’ 요리다. 사실 로시니의 오페라가 딱 이렇다.
오페라 사상 최고로 복잡… 로시니의 14중창 '칼로리 폭탄형 앙상블'
조아키노 로시니는 ‘이탈리아의 모차르트’로 불릴 만큼 천재 작곡가였다. <세비야의 이발사>, <라 체네렌톨라> 등 감칠맛 나는 코믹 오페라로 이탈리아 전역을 재패하고는 당대 최고의 도시 파리에서도 초빙을 받는다. 로시니는 단숨에 슈퍼스타가 되었다. 리드미컬한 음악전개, 감각적이고도 흥겨운 선율, 귓가를 상쾌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절묘한 아리아, 서커스를 연상케 하는 화려하고도 흥겨운 초절기교의 노래 등 버라이어티한 다중 매력을 지닌 그의 오페라는 단숨에 파리지엥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로시니 음악이 주는 거침 없는 쾌락에 너무나 즐거워했다.
‘세비야의 이발사’. /김선국제오페라단 제공
‘세비야의 이발사’. /김선국제오페라단 제공
어느 날 로시니가 프랑소와 10세의 대관식을 위한 축전 오페라 한 편을 작곡했다. 사람들은 실망한다. 보나마나 왕의 덕성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지루한 내용으로 가득 찬 작품이 될 터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로시니는 역시나 로시니였다.

오페라 <랭스 여행 Il Viaggio a Reims>은 대관식이 열리는 상파뉴 지방 랭스로 몰려가는 사람들의 한바탕 소동을 다루고 있다. 전 유럽에서 몰려온 일행은 경유지인 황금백합 호텔에서 발이 묶인다. 사람이 너무 몰려 랭스로 가는 마차 편이 전부 매진되었다는 것이다.

당황한 일행이 한데 얽혀 오페라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복잡한, 무려 14중창의 찬란한 앙상블을 노래한다. ‘아, 예상치 못한 사태가( Ah, a tal colpo inaspettato )’이다. 티롤 출신의 호텔 여주인, 프랑스 백작의 미망인, 영국, 러시아, 스페인, 독일, 폴란드 등지에서 몰려온 각계각층의 귀족들이 마치 로시니 스테이크처럼 노래에 노래를 더하고, 음악 위에 선율을 더 얹어 층층이 올려진 ‘칼로리 폭탄형 앙상블’을 연출한다. 로시니 오페라 최고의 명장면이라 부를 만하다.
 Viaggio a Reims
Viaggio a Reims
로시니의 음악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며, 매일 매일이 축제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덕분일까. 2백 년도 훨씬 전에 발표된 그의 코믹 오페라들은 지금도 남녀노소 모두를 울고 웃게 만드는 최고의 작품으로, 전 세계 가극장에서 넘버 원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