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위산업의 명운이 걸린 한국수출입은행법(수은법) 개정안이 여전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는 수출입은행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15조원에서 25조~35조원으로 늘리는 수은법 개정안이 3건 계류돼 있다. 다른 국가가 구매 당사자인 계약은 신용공여 한도(자기자본의 40% 이내)를 예외로 한다는 개정안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3명과 국민의힘 1명 등 여야 의원이 발의한 법안임에도 상임위에서 반년 가까이 제대로 논의조차 안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수은법 개정이 시급한 건 폴란드와 맺은 30조원 규모의 초대형 무기 수출 계약이 무산되거나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로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우리 방산 기업들은 2022년 폴란드에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을 공급하는 ‘수출 잭팟’을 터뜨렸다. 1차 계약만 17조원에 달한다. 2차 계약은 30조원 규모다. 문제는 2차 계약의 경우 수출입은행이 신용공여 한도에 묶여 법 개정 없이는 폴란드 수출을 위한 금융을 지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수출입은행장이 국회를 찾아 법 개정을 호소했지만 별무소득이다.

1차 계약분 중 1조5000억원 이상의 방산 수출이 지난해 이뤄져 폴란드는 한국의 다섯 번째 무역수지 흑자국이 됐다. 수출이 부진한 와중에 그나마 방산이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한 것이다. 방산 수출은 단순히 무역수지만의 문제도 아니다. 수출이 잘 돼야 방산 기업은 물론 연관 산업 등 한국 방산 생태계가 강해질 수 있다. 북한의 위협이 갈수록 거칠어져 안보 위기 상황이다. 전략무기는 동맹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재래식 무기는 우리 힘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4월 총선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번 달 임시국회가 법 개정의 마지막 기회다. 폴란드 수출 계약이 무산된다면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국익에도 막대한 손실이다. 앞으로 어떤 나라가 한국 무기를 사려고 하겠나. 재벌 기업에 대한 특혜 아니냐며 국회에서 발목을 잡을 때가 아니다. 정부도 이 기회에 K방산이 다른 방산 강국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정교한 수출금융 지원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