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의 해외 합병·합작투자 때 정부 승인을 받게 하는 산업기술보호법(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해외 사업이 많은 대형 수출기업 대부분이 해당될 이런 중요한 법안이 어제 법제사법위원회가 열리기 전까지 공청회 등 제대로 된 산업계 의견 수렴도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난해 11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한 이 개정 법안의 문제 조항은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대상 기관과 외국인이 해외 인수·합병, 합작투자 등을 진행하려는 경우 미리 공동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신고 정도가 아니라 ‘의무적 사전 승인’을 받고 해외사업을 추진하라는 것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기존의 상식 틀을 다 뛰어넘을 정도로 합종연횡의 공동투자가 이어지는 현실에서 기업들이 긴장하는 게 당연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보면 미국도 이런 보호주의 정책을 펴지만 한국은 국제적으로 아직 미국처럼 ‘갑’이 아니다. 글로벌 대기업이 일본 유럽 대만 등지의 대체 투자파트너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에 온갖 서류를 다 내고 기술을 노출하면서까지 한국 기업과 공동투자에 기꺼이 나서겠냐는 것이다.

이 법을 추진해온 정부·여당 의도는 이해된다. 정부 보조금까지 투입한 핵심기술의 유출을 막아보겠다는 것이고, 기술 보호 규제도 강화 추세 아니냐는 것이다. 근래 불거진 국내 기술 유출 사건을 봐도 기업의 책임성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규제라는 게 늘 이처럼 그럴듯한 명분에서 시작된다. 법과 행정에서 ‘디테일의 악마’를 경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해외에 공장을 짓고 필요 물자를 옮길 때 외국 파트너기업도 공동으로 한국 정부에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테슬라나 애플이 한국만 바라보며 군말 없이 응할까. 기존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등을 내실화하고, 불법 기술 유출엔 강력히 대응하는 게 현실적이다. 산업부의 논리대로 “승인을 안 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단지 절차상의 문제”라면 오히려 더 문제다. 갑질 행정, 군림 행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