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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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내려오자 강아지를 똑 닮은 로봇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컨디션 어떠세요?”라고 묻더니, 내 기분에 딱 맞는 음악을 틀어준다. 냉장고는 안에 보관하고 있는 식자재를 분석한 뒤 아침 식사로 피자를 추천한다. 오븐은 냉장고가 알려준 레시피대로 온도와 모드를 조정한다. 피자를 먹는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인공지능(AI) 로봇은 오늘의 신체·정신건강 상태를 알려준다.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4에서 ‘맛보기’로 보여줄 머지않은 미래 가정의 모습이다. 이 모든 미래를 구현할 핵심 기술 중 하나가 인터넷 연결 없이 각 기기에 장착된 칩으로 AI를 구현하는 ‘온디바이스 AI’다. 많은 전문가가 올해 CES의 주인공으로 온디바이스 AI 기술을 적용한 혁신 기기들을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굴만 봐도 안다…10초 만에 건강 검진·기분 맞춰주는 로봇

눈동자 인식해 신체·정신건강 파악

CES 2024에는 글로벌 기업과 혁신 스타트업이 각자의 온디바이스 AI 역량을 끌어모은 가전 및 로봇 제품을 대거 출품한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제품 중 하나가 일본 통신업체 NEC가 공개한 ‘얼굴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AI 부문 CES 혁신상을 받은 이 제품에는 얼굴을 인식해 신체·정신건강 상태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기능이 담겨 있다. 관련 앱이 내장된 스마트폰 카메라에 얼굴을 10~60초 정도 대면 안구의 움직임과 동공 반응을 분석한다. NEC가 일본 쓰쿠바대 등과 개발 중인 이 제품은 조만간 상용화된다.

AI 부문 최고 혁신상을 받은 독일 부품업체 보쉬의 ‘총기 탐지 시스템’에도 이 기술이 적용됐다. 이 제품은 AI 기반 CCTV로 사람이 쥐고 있는 총기와 주변에서 들리는 총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총기나 총소리를 감지하는 즉시 사용자와 보안담당자, 경찰서에 관련 내용을 전달한다. 총기 사고가 매일 발생하는 미국이 벌써부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푸드테크(푸드+기술)에도 온디바이스 AI가 적용됐다. 음식을 조리하고 음료를 제조하는 푸드 로봇이 대표적이다. 2020년 출범한 캐나다 로봇업체 SJW로보틱스의 로봇 레스토랑 ‘로웍(RoWok)’은 AI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이 음식을 조리한다. 겉면은 사람들의 주문을 받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달렸고, 내부는 식자재 용기와 이를 조리할 로봇 등으로 구성됐다. 손님이 디스플레이로 볶음밥, 볶음국수 등을 주문하면 내부에서 쌀과 양파, 당근, 돼지고기 등이 담긴 용기가 조리 로봇으로 옮겨진다. 조리 로봇이 식자재를 조리해 손님에게 제공한다. 로웍은 CES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삼성·LG 가전 신제품에 AI 미래 담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CES 2024에서 선보이는 신제품에서도 온디바이스 AI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형 비스포크 냉장고 ‘패밀리허브 플러스’와 ‘애니플레이스 인덕션’을 처음 공개한다. 패밀리허브는 냉장고 안 AI 카메라로 식자재 종류와 입출고 시점을 인식해 정보를 제공한다. 삼성전자 푸드 앱인 ‘삼성푸드’는 내부 AI 카메라로 냉장고에 보관 중인 식자재를 파악해 만들 수 있는 요리(레시피)를 추천한다. 레시피는 냉장고 터치스크린과 스마트폰 화면에 뜬다.

삼성의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제트 봇 콤보’도 마찬가지다. 온디바이스 AI 덕분에 마룻바닥과 카펫을 구분해 바닥 재질에 따라 청소 방법을 달리한다. 1㎝ 높이의 장애물 정도는 알아서 피한다.

LG전자는 생활가전 로봇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를 공개한다.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이 소형 로봇은 집안 곳곳을 돌면서 쓸데없이 켜진 전등과 TV를 끄는 등 ‘집사’ 같은 역할을 한다. 집주인이 들어올 때 ‘현관 마중’은 기본이다. 목소리와 표정으로 감정을 파악해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추천, 재생한다.

AI로 집안 곳곳을 관리하는 스마트홈 시스템도 내놓는다. LG전자의 여러 가전제품에 들어간 카메라와 밀리미터파(㎜Wave) 센서 등을 통해 집주인의 심박수와 호흡수를 감지하고 이에 맞게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준다.

라스베이거스=김익환/황정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