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으로 인한 연간 근로손실일수 39.2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초 발표한 ‘대체근로 전면 금지로 인한 문제점과 개선 방향’ 보고서의 일부다. 최근 10년간 임금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수다.

일본(0.2일)보다 200배 많고 노조 입김이 강한 독일(4.5일)보다 8.7배 높은 수치다. 근로손실일수는 파업 참가자와 파업 시간을 곱해 일일 근로시간(8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숫자가 클수록 노사관계가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파업이 빈번한 배경엔 대체근로 금지와 함께 ‘파업을 조장하는 수준’의 법·제도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파업찬반투표 유효기간 문제다.

현행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노조는 조합원 과반수 투표를 통해 쟁의행위에 들어갈 수 있다. 쟁의행위 돌입 여부는 직접·비밀·무기명 투표에 의한 조합원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노조의 찬반투표기간과 투표 결과의 유효기간에 관한 규정은 전혀 없다. 이렇다 보니 찬반투표가 가결될 때까지 투표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고 노조 집행부가 투표를 강요하거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찬반투표 유효기간이 없다 보니 한 번 가결된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2년간 10차례 파업을 벌인 경우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노조는 2019년 7월 임단협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된 이후 2021년 7월까지 모두 10차례 부분파업이나 전면파업을 했다. 파업 찬반투표에 앞서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하기 전 네 차례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파업 찬반투표 관련 규정이 없어 투표 현장에 ‘뭉치표’가 돌아다니거나 대리투표 의혹으로 노노 갈등이 빚어져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해외에서는 파업 찬반투표 절차를 비교적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우편투표 방식을 채택했고 가결 시 6개월의 유효기간을 두고 있다. 독일은 1회 찬반투표로 1회의 쟁의행위만 가능하게 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 한 번의 파업 찬반투표 결과가 이후 수차례 파업의 근거로 이용되다 보니 회사는 파업 기간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상실한다”며 “투표기간과 가결 시 유효기간을 정하고 유효기간이 지나면 효력이 사라지도록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승현/곽용희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