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인재 영입의 정치학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해진 홍준표 대구시장은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이기택 총재가 이끈 통합민주당으로부터 3각 영입 러브콜을 받았다. 그러던 차에 김영삼 대통령(YS)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얼떨결에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외부 신진 인사 영입 경쟁이 본격화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 전엔 우리 정치의 주요 수혈 통로인 법조인, 관료, 교수 등에서 고르는 정도였다. 임기 후반기로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진 YS는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등 민중당 출신까지 끌어들였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DJ)도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등을 영입했지만, 기선을 잡은 신한국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은 공천 학살로 김윤환 등 민정계를 잘라내고 오세훈 원희룡 등 전문가 그룹과 운동권 출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DJ는 우상호 이인영 임종석 등 386 운동권 인사들을 영입했다. 결과는 역시 한나라당 승. 두 번 모두 취약점 보완과 외연 확장, 참신함 등 인재 영입 기본 원칙을 따른 측이 이겼다. 이후엔 대대적인 영입보다는 장애인, 여성 전문직, 청년 등 스토리 위주의 발굴이 이뤄졌다.

선거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인물, 바람, 조직, 정책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인재 영입이 국민 체감도를 가장 높인다는 분석도 있다.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이 인재영입위원회를 가장 먼저 꾸리는 이유다. 누구를 ‘1호 인재’로 하느냐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기도 한다.

여야가 총선 5개월을 앞두고 인재 영입 전쟁에 본격 들어갔다. 국민의힘이 영입위원회를 구성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직접 영입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이제 외부 유력 인사에 기대는 식의 인재 영입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진국 유력 정치인들은 젊을 때부터 정당에 가입해 밑바닥에서 시작, 성장해 나가는 게 보통이다. 물론 훌륭한 사람을 데려와 정치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유권자의 선택 폭을 넓혀주는 것도 중요한 정치 행위다. 다만 정당의 강령과 가치, 비전과 맞지 않는 마구잡이 깜짝쇼식 영입이라면 곤란하다. 정당 내부에서 정치인 육성 시스템을 갖춰나갈 때가 됐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