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AI 관심법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송서래는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 서래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하면서도 몇 명을 죽였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이때 인상적인 영화적 장치로 등장하는 게 거짓말 탐지기다.

‘폴리 그래프’라고 불리는 거짓말 탐지기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은 하버드대 출신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몰튼 마스턴 박사(1893~1947)다. 그는 혈압 측정을 활용한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했다. 피의자에게 쌀을 씹게 해서 침이 많이 배어 나오면 거짓말로 판명한 중국의 전통적인 방식에 비해 상당히 진화한 것이다.

만화 스토리 작가이기도 한 마스턴 박사는 유명한 만화 캐릭터도 만들었다. 원더우먼이다. 히어로에게는 저마다 필살기가 있는데, 원더우먼의 대표 무기는 진실의 올가미다. 이 밧줄에 묶이면 진실만을 말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육체적 고통을 받는다.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기술도 여러 갈래로 발전하고 있다. 표정,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동공의 크기 변화 등을 바탕으로 감정 상태를 파악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또 하나의 축은 음성을 이루는 다양한 구성 요소로 독심술을 발휘해 보는 것이다. 분당 단어 수(wpm), 음의 높낮이, 음성 크기 등으로 심리 상태를 짚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wpm이 평균보다 낮다면 그 사람이 걱정이 많거나 긴장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펀드매니저들이 투자 대상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해 AI 기술 적용에 적극적이라고 보도했다. 콘퍼런스콜이나 기업설명회에서 CEO의 발언을 녹음해 뒀다가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그의 호언장담이 ‘뻥카’인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펀드매니저들이 CEO를 이렇게까지 의심하는 것은 기업들이 설명회 자료를 만들 때 AI 자연어 처리(NLP) 기술을 활용해 장밋빛으로 포장하는 데 골몰하기 때문이다. 기업들 역시 투자회사가 NLP로 분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전 대응한 것이다. 흡사 톰과 제리의 숨바꼭질을 연상케 한다. 기술의 발달로 ‘뛰는 놈과 나는 놈’ 간 추격전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