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진출 국내 건설사들이 현지에서 조 단위 손실을 보면서도 수천억원대의 법인세 폭탄을 맞아왔다는 한경 보도(10월 19일자 A1, 3면)는 경직된 우리 세법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진출한 건설업계의 현지 법인이 파산 지경에 이르러도 이런 자회사에 빌려준 본사 자금에 대해 이자를 정상적으로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법인세 규정 때문이다. 대형 건설업체들의 현지 자회사에 대한 대여금은 총 2조3000억원 규모로, 이로 인해 추가된 법인세는 최근 10여 년간 5300억원에 달했다.

다행히 현 정부 들어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풀겠다고 했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최근 조세특례제한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내놓기는 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이 문제는 법인 및 법인세에 대한 국내외의 서로 다른 법체계 때문에 비롯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지사나 지점보다 현지 법인이 설립돼야 수주 활동이 원만한 데다 경영이 어려워도 회사 문을 닫는 것은 매우 힘들고 시일도 길게 걸린다. 과세당국은 이런 특성을 무시한 채 현지 법인 영업을 위해 국내 모기업이 어쩔 수 없이 빌려준 돈에 대해 이자 수령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세금을 매겨온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부당성에 대한 업계의 법 개정 호소가 10여 년간이나 묵살돼왔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법인세·소득세 등 주요 세목의 고(高)세율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세제에서는 이런 경직성이 더 큰 문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적 미래 프로젝트인 초대형 네옴시티 건설 등에 한국 기업이 진출하려면 이런 불합리한 법규부터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더구나 고유가로 지금 중동에는 오일 머니가 넘치고 있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21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방문한다. 윤 대통령의 중동행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도 동행해 건설·방위산업에서 또 한 번 중동 특수가 기대된다. 하지만 우리 내부의 이런 기업 발목 잡기를 떨쳐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해외건설협회 등에는 업계의 누적된 민원과 제도 개선 제안이 쌓여 있다. 건설업계만의 고충도, 중동 진출만의 애로도 아니다. 수출입은행의 자본금 제한 규정 때문에 폴란드로의 2차 방산 수출에 차질이 우려되는 최근 사례도 그렇다. 경제부처 장관들은 모두 영업부장이라는 각오로 해외 영업과 수출의 걸림돌 요소를 적극 찾아내 조기에 확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