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이 고층빌딩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 금융가를 지나가고 있다. 노동계가 법정 정년을 만 60세에서 65세로 늘리려 하는 가운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일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한경DB
직장인들이 고층빌딩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 금융가를 지나가고 있다. 노동계가 법정 정년을 만 60세에서 65세로 늘리려 하는 가운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일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한경DB
법정 정년 연장은 정부와 재계뿐 아니라 노동계도 그동안 섣불리 공론화하지 못한 ‘판도라의 상자’였다. 청년층이 원하는 ‘괜찮은 일자리’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법정 정년 연장은 청년층 ‘밥그릇 뺏기’라는 따가운 시선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법정 정년이 만 60세에서 65세로 늘어나면 수십조원의 비용이 추가 소요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년 연장 논의 ‘첫발’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발족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연구회는 노동시장·노동법·사회복지 전문가를 중심으로 13명으로 구성됐다. 정부가 올해 초 ‘4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2023~2027년)’을 수립하고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계속고용 문제를 경사노위에서 다뤄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고령화에 불붙는 정년연장론…"청년층 밥그릇 뺏기" 지적도
한국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8년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5년엔 20.6%에 달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정부도 60세 이상 근로자의 ‘계속고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60세 이상 고용률은 이미 높아지는 추세다. 2013년 38.4%이던 60세 이상 고용률은 지난달엔 46.6%로 높아졌다.

보건복지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정부에 제출할 최종 보고서에 연금 수급개시 연령(현재 63세, 2033년 65세)을 66~68세로 늦추는 방안을 담기로 한 점도 변수다. 현재 법정 정년과 연금 수급연령 간 차이가 더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용’이 관건

주요 국가는 10여 년 전부터 정년을 만 65세 이상으로 올리거나 폐지했다. 1967년 정년을 65세로 정한 미국은 1978년 70세로 올렸다가 1986년 정년 개념 자체를 없앴다. 영국은 2011년 정년 개념을 삭제했다. 일본의 법정 정년은 65세지만 근로자가 원하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다. 독일은 현행 65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늦추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과거 정년 연장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했지만 청년실업 문제가 제기되면서 무산됐다. 윤석열 정부는 ‘계속고용’ 개념을 논의하고 있지만 노동계가 불참하면서 ‘반쪽 논의’가 될 상황이다.

경사노위는 일괄적인 법정 정년 연장은 부작용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신 기업이 상황에 맞게 정년 연장이나 고용 연장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열어놓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계속고용이 임금피크제 등을 통한 임금 삭감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경영계는 정년 연장에 소극적이다. 2016년 법정 정년이 60세가 된 지 7년 만에 다시 정년 연장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에서다. 정년 연장 시 들어가는 추가 비용도 부담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 60~64세 추가 고용에 2019년 기준 15조8626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됐다. 직접비용(임금)과 4대 보험료 등 간접비용을 합친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비용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산업 현장에선 정년 연장이 이미 임금·단체협상의 화두로 떠올랐다. 삼성그룹을 비롯해 현대자동차·기아, 한화, HD현대 등 주요 대기업 노조는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정년 연장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정 정년 연장은 고령층을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기업들이 여러 방안 중 자발적으로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경민/곽용희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