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영원한 청년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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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영원한 청년 최인호](https://img.hankyung.com/photo/202308/AA.34272316.1.jpg)
1973년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을 연재한 것은 스물여덟 살 때다. 신문 연재소설 작가 중 최연소다. 한 출판사 사장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간호사들이 연재소설을 먼저 읽으려고 신문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는, 퇴원하자마자 당시로는 거금인 50만원을 주고 출판계약을 맺어 100만 부 이상 판매 히트를 쳤다.
1975년 9월부터 암 투병으로 중단한 2010년 2월까지 34년6개월 동안 월간 샘터에 연재한 <가족>은 국내 최장 연재소설이다. 그의 소설 21편이 영화로 만들어져 이 분야에서도 기록 보유자다. 그중 6편을 서울고·연세대 후배인 배창호 감독이 찍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 <깊고 푸른 밤>은 아시아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최인호청년문화상’이 제정됐다. 이 땅의 청년문화를 선도한 업적을 기려 문학상이 아니라 청년문화상으로 만들어졌다. 제정추진위원장은 덕수초·서울중·서울고 동창으로 인생의 ‘베프’인 이장호 감독이 맡았다.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한 이 감독은 콘티도 없이 원작 소설책만 들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장면을 찍은 뒤 편집해 대박을 냈다. 당시 서울 인구가 300만 명일 때 4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최인호청년문화상 첫 수상자는 조로증을 앓는 17세 소년의 이야기로 영화화도 된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작가 김애란이다. 김 작가는 최인호를 생각하면 ‘현역’이란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최인호가 1974년 한 일간지에 기고한 ‘청년문화 선언’의 유명한 대목이다. “고전이 무너져 간다고 불평하지 말고 대중의 감각이 세련되어 가고 있음을 주목하라.” ‘꼰대’가 돼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곱씹어 볼 만한 말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