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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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대략 25%다. OECD 평균의 두 배다. 게다가 이 중 90%는 4인 미만의 영세업자다. 한국 사회에서 자영업은 삶의 최전선이자 한 번 망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벼랑끝이다.

역대 정부마다 자영업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왔지만, 늘 ‘백약이 무효’였다. 정부가 쓸만한 카드가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카드 수수료를 낮춰주거나 세제 혜택을 주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

이 같은 자영업 시장에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앱이 가져 온 변화는 상당하다. 시쳇말로 ‘망할 확률’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음식업 부문에서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은 2018년 93.2%에서 2020년엔 82.7%로 떨어졌다. 펜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음식 자영업자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던 건 배달앱이라는 방파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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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따르면 2019년 말 연간 4억 건이었던 배민 주문 수는 지난해 11억1000만 건으로 늘었다. 입점 가게도 같은 기간 14만 여개에서 31만여 개로 불어났다. 통계청의 온라인쇼핑 동향 조사에 따르면 배민 등 배달앱을 통한 음식 서비스 거래액도 2019년 9조7350억원에서 지난해 26조원 규모로 폭풍 성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외식업체 경영실태조사 2017-2022'에 따르면 2019년 배달앱을 이용하는 외식업체 비중은 전체의 11.2%였으나, 2020년에는 19.9%, 2022년에는 26.2%로 증가했다. 배달앱에 무슨 마력이 있는 걸까.

전단지 광고 시대에서 배달앱 입점 시대로

업주들은 비용 절감 효과를 첫째로 꼽는다. 예컨데 배민에서 월 8만8000원(부가세 포함)짜리 정액제 상품 울트라콜을 2개 이용 중이고, 한집배달도 쓰고 있는 업주를 가정해보자. 정액제는 말 그대로 한 달에 주문을 몇 건을 받든, 배민에는 소정의 금액만 지불하면 되는 방식이다.

울트라콜 비용은 월 17만6000원이다. 한집배달은 중개이용료로 음식값의 6.8%를 내는데, 예를 들어 3만5000원짜리 족발 하나를 팔면 2380원이 수수료로 나간다. 주문 수에 따라 수수료 규모는 달라지지만, 음식점주들은 “예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남는 장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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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 요기요, 쿠팡이츠 같은 배달 플랫폼이 대중화되기 전만 해도 책자 광고료는 평균 20만 원 수준이었다. 특히 앞장 노출을 위해서는 최소 40만~50만 원을 내야 했다. 별도의 낱장 전단지 광고까지 제작하려면 70만~80만 원이 더 필요했고, 여기에 이 광고물을 동네에 뿌릴 아르바이트 인건비까지 더하면 월 홍보비용으로 200만 원 넘게 쓴다는 업주들이 즐비했다. 배달 주문을 소화할 배달원을 따로 두는 경우 인건비 부담은 배가 됐다.

족발업을 하는 한 음식점주는 “배달앱 수수료나 배달비를 성토하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나처럼 장사에 목숨 건 사람들은 그나마 배달앱이 있어서 요즘 같은 시대를 버틸 수 있는 거라는 걸 잘 안다”며 “주문 중개 서비스를 이용하면 그만큼 정당한 사용료를 내야 하는 것인데, 식자재나 임대료, 인건비처럼 증가분이 큰 비용에 관해선 얘기하지 않고, 월 8만원짜리 상품이나 6.8% 정도의 수수료율에만 열을 올리는 것에는 공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2022 외식업체 경영실태 주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식업체들이 현재 겪고 있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7점 척도로 평가하게 한 결과 실제로 ‘식자재비 상승’이 평균 5.79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경쟁 심화(5.42점), 인건비 상승(5.22점), 임차료 상승(5.21점) 등의 순이었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가 펴낸 ‘2022 외식업 경영실태 조사 통계보고서’에서 배달앱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체 3071개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배달방식을 취급하지 않아서’가 전체의 75.1%를 차지했다. ‘비용이 부담되어서’라는 응답은 전체의 15.2%에 불과했다.

영세 자영업자에 방파제 역할도

배달앱의 성공은 플랫폼이라는 21세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효과를 증명한다. 성공한 플랫폼은 20세기까지만 해도 정부가 맡았던 각종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마크 저크버그가 페이스북(현 메타)의 최고운영책임자로 셰릴 샌드버그를 영입했던 건 그녀의 정부 경험을 사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플랫폼 창업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전통적인 기업보다는 정부와 더 비슷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진짜 공공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배민이 음식 자영업의 방파제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동력은 가속성과 경쟁이다. 배민 등 배달앱은 수많은 음식점(상품 및 서비스 생산자)을 소비자와 공간의 제약없이 연결시킴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 입점 업주들 간 경쟁은 플랫폼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운다.

배달앱은 이 과정에서 기술의 진보를 달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쿠팡이츠의 단건 배달에 이어 배민의 알뜰 배달 등 새롭게 나오는 서비스들은 음식점주, 배달 기사, 소비자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한 테크놀로지 진화의 결과물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음식업주가 조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각종 기술 지원을 해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배달앱은 사업자등록증과 영업신고증만 갖춘다면 입점 절차도 간소하고, 전화 주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문이 PC나 모바일 주문시스템에 바로 뜬다. 조리에만 집중하면서 주문 알림이 뜨면 화면을 보고, 조리 후 포장까지 마치면 라이더들이 제때 픽업해가는 구조다.

플랫폼의 가장 큰 위협은 규제다. 대부분의 플랫폼은 사실상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규제를 넘으면 어마어마한 보상이 기다리지만, 넘지 못하면 퇴출 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한국의 배달앱은 생존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경기도 등이 추진한 공공 배달앱으로는 배민을 대체할 수 없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