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기 켜고 조사 받겠다"는 징계대상 직원…난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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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대상 직원이 녹취 하거나, 파일공유 요구 땐
조사자, 명시적으로 ‘녹취 금지’할 권한 있어
면담내용 외부 유출 … 효과적 조사 곤란해져
위반 땐 ‘인사명령 위반’ 이유로 징계 가능
기업이 직원의 비위행위 등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녹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원이 말을 바꾸는 경우를 대비하거나 직원의 해명 등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조사자가 면담 대상자에게 녹취 사실을 알리고 동의받아야 할까.
공개 녹취를 하면 자신의 진술이 그대로 증거로 활용된다는 점을 인식해 면담 대상자가 방어적 태도로 일관하게 된다.

그러나 조사 면담은 공개 녹취를 원칙으로 삼는 게 좋다. '인격권'과 '방어권' 침해 논란을 사전에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개 녹취 시 직원의 방어적 태도, 조사자에 대한 제약은 충실한 사전 준비로 해소할 수 있다. 동의는 서면으로 받는 게 가장 좋지만, 여의찮다면 면담을 시작하면서 녹취 사실을 알리고 동의한다는 진술을 녹음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녹취를 거부하면 어떻게 할까. 비공개 녹취가 불가피한 예외적 상황도 있다. 그러나 비공개 녹취는 최대한 지양하는 게 좋다.
조사 면담은 가급적 ‘공개 녹취’ 원칙으로
녹취파일이나 녹취록을 증거로 활용할 때 기업 또는 조사자에게 '조사 윤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나아가 '방어권'과 '인격권(음성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이 문제 될 수 있다.‘대화자 간 녹취는 상대방 동의 없이 가능하며 적법하다’는 게 법률 상식이라 막연히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대화자 일방이 상대방과의 대화를 승낙 없이 녹음해도 그 녹음은 ‘타인 간 대화’ 녹음이 아니므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이런 인식을 갖게 했다(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3도16404 판결 등).
그러나 이 판례는 상대방 동의 없는 녹취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되지 않는다는 뜻일 뿐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며 적법하다는 뜻이 아니다.
동의없는 녹취, 사생활 침해 등 손배 여지
대화 시 상대방 동의 없는 녹취는 △음성권, 사생활상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로 인정돼 녹취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수원지방법원 2013. 8. 22. 선고 2013나8981 판결).사내에서 무분별하게 실행될 경우 사생활 비밀 침해, 직장 내 화합을 해하는 것을 이유로 징계 근거가 될 수 있다(대법원 2011. 3. 24. 선고 2010다21962 판결). 법적 리스크를 굳이 부담할 필요는 없다.

면담자 ‘방어권 보장’ 차원 녹취록 열람 기회 줘야
그렇다면 조사 대상인 직원이 실행하는 녹취는 허용해야 할까. 매우 민감한 사항이다.조상욱 변호사는 "조사자는 본인이 녹취한다는 점을 면담 대상자에 고지하면서 면담 대상자의 녹취를 명시적으로 금지할 권한이 있다"며 "면담 내용이 외부에 무분별하게 공개돼 효과적인 조사가 곤란해지고 기밀 유지가 어렵게 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무상 조사자가 녹취 금지를 명했을 때 면담 대상자가 방어권 침해를 근거로 따르지 않거나 사후에 문제 삼는 사례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녹취 금지를 위반하면 인사 명령 위반을 이유로 면담 대상자를 징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조사자가 공개 녹취한 파일을 공유해달라고 요구한 사례는 있다. 조사자는 이 요구에 대해서도 외부 유출 위험 등을 들어 거부할 수 있다.
단, 파일 제공 대신 △조사자 앞에서 본인 또는 그 변호사에게 공개 녹취된 파일을 청취할 기회를 주거나 △녹취록을 열람할 기회를 주는 것은 면담 대상자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적극 고려할 수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