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빈체로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빈체로 제공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39)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세계적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그는 화마와의 힘겨운 싸움을 성공적으로 이겨냈다.

하델리히의 음악 인생은 남부러울 것 없이 시작됐다. ‘음악 영재’ 소리를 들으며 일곱 살에 데뷔 연주회를 열었다. 위기는 열다섯 살에 닥쳤다. 가족 농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당시 의료진은 악기를 연주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까지 내놨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음악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재활에 매달렸다. 마침내 2006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래미상, 오푸스 클래식상,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등 국제적 음악상을 휩쓸면서 이름값을 높여왔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과 잇따라 협연하며 세계무대에서 존재감을 부각해 온 하델리히가 한국을 찾는다. 오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미하엘 잔데를링 지휘) 내한 공연의 협연자로 나서면서다.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빈체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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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무대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중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준다. 공연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과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하델리히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여덟 살 때 처음 연주한 곡이다. 나를 바이올리니스트의 길로 이끈 작품이기에 특별히 더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곡의 선율은 부드럽고 아름다우면서 순수하다. 고음에서 움직이는 바이올린 선율에서는 마치 천사가 노래하는 듯한 심상까지 느낄 수 있다”며 “수십년간 공부하고서야 이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에서 작곡가에 대한 경의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느린 악장을 연주할 때마다 이 작품이 얼마나 완벽하면서도 단순한지, 또 친밀하면서도 인간적인지를 느끼게 돼요. 경이로운 순간들이죠. 마치 베토벤이 느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 너머에 있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달까요. 작품에 대해 알아갈수록 인간이 만들어 낸 음악이란 생각을 할 수 없게 돼요. 그의 작품을 연주할 수 있는 건 제게 너무나 큰 행복이에요.”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빈체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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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델리히는 한국 청중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다. 2017년 서울시립교향악단 협연자로, 지난해 같은 악단의 '올해의 음악가'로 활동하면서 안면을 텄다.

“한국에는 내적인 친밀감이 있어요. 뉴욕에서 일부러 찾아 먹을 만큼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에서 열리는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온라인으로 자주 보기도 하죠. 물론 한국 청중에 대한 애정과는 비교할 수 없죠. 열정적이고 따뜻하고 친절한 관객들의 모습은 특히 기억에 남아요. 한국에 다시 돌아갈 날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목표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저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바이올린 소리가 제 목소리 같기도 해요. 제 신체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궁극적으론 악기를 통해 음악 안에 담긴 메시지, 감정, 서사를 관객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음악에는 말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작곡가의 영감을 그대로 청중에게 전할 수 있는 연주라니 그것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요.“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