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독서의 시간'…유튜브·넷플릭스 시대에도 책은 건재했다
베스트셀러 소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 나오는 휴남동 서점, 인기 아동 판타지 소설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의 전천당…. 책 속의 공간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1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한국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에서다.

코로나19가 끝나자 홀쭉해졌던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살과 근육이 붙었다. 출판사 등 참가 업체는 지난해 15개국 195개사에서 36개국 530개사로 두 배 이상으로 불었고,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수상자 등이 무대에 오른다. 행사는 오는 18일까지 이어진다.

○미공개 신작 찾아 ‘오픈런’

행사장은 평일인데도 ‘애서가’들로 가득 찼다. 독서인구 감소로 풀이 죽었던 출판인들의 얼굴엔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이날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 부스는 출판사 대원씨아이가 설치한 인기 농구 만화 <슬램덩크> 전용관이었다. 이곳에서 만화책을 사면 일러스트 티켓 등 ‘굿즈’를 준다는 소식을 들은 팬들이 수십m의 줄을 만들었다.
'다시, 독서의 시간'…유튜브·넷플릭스 시대에도 책은 건재했다
황금가지(민음사)는 한국 대표 공상과학(SF) 작가 이영도의 미공개 신작 단편소설 <너는 나의>를 선착순으로 증정하는 이벤트로 관심을 모았다. 대학생 어현서 씨(20)는 “작품이 일찍 소진될까 봐 개막 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오픈런’을 했다”며 웃었다.

문학동네는 인기 연애 관찰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을 패러디한 ‘독파시그널’ 코너를 선보였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고 몇 개의 설문에 답하면 ‘운명의 책’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샤르자 등 국제 출판인들 발길

서울국제도서전이란 이름에 걸맞게 행사장 곳곳에서 해외 출판인들이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 출판사 펠트리넬리 에디토레의 파비오 무지 팔코니 편집자는 “얼마 전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이탈리아에 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한국의 또 다른 매력적인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해 9년 만에 서울을 찾았다”고 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문화도시 샤르자는 주빈국으로 도서전에 참여했다. 아흐메드 빈 라카드 알 아메리 샤르자 도서청 대표는 “국가와 국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문화의 역할은 중요하다”며 “샤르자에는 K팝과 K드라마뿐 아니라 나태주, 서정주, 김소월의 한국 문학 작품이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다”고 했다.

개막 행사에 참석한 김건희 여사는 “전 세계가 독특한 한국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 도서에 주목하고 있다”며 “한국 도서가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고 세계 출판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파이 이야기>로 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얀 마텔, 박찬욱 감독이 영상화하기로 해 화제가 된 <동조자>를 쓴 베트남계 미국 소설가 비엣 타인 응우옌 등도 도서전을 계기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다채로운 강연 이어져

북토크는 이번 도서전에서도 핵심 콘텐츠 역할을 톡톡히 했다. 번역가 안톤 허는 ‘한국문학 영미권 출판의 기적’을 주제로 연단에 올랐다. 그는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와 <대도시의 사랑법>을 번역했다. 그는 “제가 하는 일 중 번역은 30%뿐이고, 나머지 70%는 ‘맨땅에 헤딩’하는 일”라며 “번역가는 번역뿐만 아니라 해외 네트워크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 기쁨’이란 주제로 네 명의 디자이너도 마이크를 잡았다. 김형진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는 자칫 저자가 자기 책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면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보완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서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된 10권 중 <각자 원하는 달콤한 꿈을 꾸고 내일 또 만나자> <비정량 프렐류드> 두 권의 디자인을 맡았다.

한편 이날 개막식에선 오정희 소설가의 도서전 홍보대사 위촉에 항의하는 일부 문화예술 단체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오 작가가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시행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이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구은서/안시욱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