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나쁜 입법'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핵심 과제는 공영방송이 어떻게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방송법 등 개정안은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것임을 제안 이유로 제시하고 있으나, 오히려 사회적 분열과 갈등만 격화시키는 나쁜 입법이라 할 것이다.

개정안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갖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구성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 공영방송은 정부가 출자해 설립하고 강한 공공성을 갖는 만큼 대통령에게 사장과 이사회를 구성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이사회 구성은 법정 단체의 추천, 방송통신위원회의 임명 제청, 대통령의 임명 등 3단계로 이뤄지는데, 추천 단체와 추천 인원까지 법률로 정함으로써 이사회 구성은 실질적으로 추천 단체가 좌우지하는 구조로 될 것이다.

사장 추천 절차를 보더라도 100명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공직 임명에 있어 다수 국민의 추천을 필수절차로 하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국회 교섭단체는 의석수 비율에 따라 5명의 이사를 추천하도록 해 정치권이 이사회 구성과 운영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한다는 개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국회가 행정권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직접 행정권 구성에 관여하는 것은 정쟁만 초래할 뿐 득보다 실이 많다. 오히려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정당 추천을 하는 현재 관행을 손보는 것이 먼저다.

특정 단체에 이사 추천권을 부여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KBS의 경우 국회 교섭단체, 학회, 시청자위원회, 방송 관련 단체가 각각 5명, 6명, 4명, 6명의 이사를 추천하도록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인물이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법률에서 특정 단체를 지정해 추천 인원까지 할당해서는 안 된다. 특정 단체 선정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과 가수, 연기자 등 다른 방송 관련인은 왜 포함되지 않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추천 단체에 방통위가 선정한 방송 미디어 관련 학회를 포함하고 있는데, 방통위의 학회 선정 단계부터 논란은 물론이고 이사 추천 과정에서도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회가 굳이 직접 공영방송 지배구조 구성에 참여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학회는 회원의 자격, 규모, 재정 상태, 활동 정도, 법인격 유무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학회가 무엇인지 법적으로 정의된 개념도 없다. ‘관련’ 학회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방송미디어학 이외에 법학, 정치학, 경제학, 경영학은 여기에 포함되는가 포함되지 않는가.

사실 이런 문제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입법 과정에서 상임위와 법사위 등 입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결과 문제투성이의 법률안이 됐다. 이해의 조정과 타협, 충분한 심사를 거친 숙의(熟議)를 생략한 채 바로 본회의에 직회부한 탓도 있다. 좋은 입법을 할 입법부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검수완박법 입법에서 위장탈당 등이 입법 절차를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한 판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논의하면서도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졸속으로 개정하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이사회 구성에 정당이 관여하는 현재의 관행을 어떻게 제거할지부터 검토해야 한다. 이런 문제점이 종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