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금융위기 막을 '신뢰의 제도화'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는 미국 정부의 예금 보호와 유동성 지원 덕에 일단 위기 확산은 진정됐다. 하지만 예금자들이 은행에 맡긴 자신의 예금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우려하면서 자금 인출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의 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생기는 ‘뱅크런’에 대한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중소은행 중심의 예금 인출과 함께 전체 예금 규모가 감소하면서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안의 목소리가 커졌다.

물론 일시에 모든 자금이 빠진 것은 아니고 미국 정부와 미 중앙은행(Fed)이 예금자 보호와 유동성 공급 등의 조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위기를 맞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금융당국의 정책 대응이나 입장 표명에 있어 조금이라도 예금자 보호와 유동성 공급에 대한 확신을 약화할 만한 내용이 포함되는 순간, 시장이 공포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SVB 사태 수습 과정에서 비슷한 예금 전액 보호가 가능하다는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의 3월 21일 발언 이후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이슈가 제기된 탓인지, 모든 은행에 대한 예금 보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22일 밝히자 미국 금융시장이 부정적인 충격을 받기도 했다. 3월 23일엔 다시 추가적인 지원이 가능하다고 발언을 번복한다.

이러한 과정은 뱅크런을 제어함으로써 금융위기 확산을 막는 핵심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결국 ‘유동성 제공을 통한 예금 보호가 가능하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걸 확인시켜준 것이다. 사실 이를 제도화한 과정이 미 중앙은행, 즉 연방준비제도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 건국은 18세기 후반이지만 개별 주의 경제적 자치 권한을 강조하는 전통 때문에 지금 같은 체제가 정립된 것은 20세기 초반이었다. 그 이전인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제1·2차 미합중국 은행 설립과 같은 중앙은행 제도 시행은 얼마 후 좌절되곤 했다.

결국 1907년 금융공황과 이에 따른 뱅크런을 막기 위한 과정에서 JP모간 같은 민간 금융가에 의해 예금을 보호하는 유동성 공급 조처가 취해졌다. 이를 통해 뱅크런과 금융위기 확산을 막기는 했지만 이의 본격적인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당시의 사회적인 요구에 따라 현재의 미국 중앙은행 체제인 연방준비제도가 갖춰진 것이다.

유동성 공급을 통한 예금 보호라는 역할을 민간 금융자본도 수행할 수 있다면 굳이 연방준비제도 같은 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신뢰의 제도화’를 꼽을 수 있다. 사태 발생 이후에 민간 금융자본이 유동성을 공급하며 중앙은행과 비슷하게 기능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후 수습책일 뿐, 사전적으로는 그러한 역할을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에 의한 예금 보호 이외에도 예금보험공사 형태의 보장도 가능하다. 미국은 대공황을 거치면서 1933년 연방예금보험공사라는 이름으로 일정 금액 이하의 예금에 대한 명시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특정 금액 이상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해석이 나오면 그 부분에 대한 우려는 남을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예금 보호는 보장 금액의 상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사실상 ‘전액 보장 효과’가 발생하도록 예금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구나 디지털 금융 전환으로 손쉽게 온라인을 통해 입출금에 접근할 수 있는 현재의 금융환경에서 뱅크런 가능성이 커졌음을 함께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예금금융기관이어도 경영진에 문제가 있다면 유동성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우고 파산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금수취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통한 예금 보호와 해당 금융기관 경영진에 대한 책임은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SVB 사태 처리에서 볼 수 있듯, 예금수취 금융기관에 책임을 지우는 과정에서 예금 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금융위기로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상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중으로부터 예금을 수취하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유동성 공급을 통한 예금 보호’ 즉, 신뢰를 제도화하는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