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지방' 풍선효과 우려…교육시설 빽빽한 대도시 환영, 지방은 반발
[한국형 제시카법] 서울보호법?…"성범죄자 지방에 떠넘기나"
아동 대상 성범죄자 등 고위험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시행까지는 여러 암초가 놓여 있다.

헌법에 보장된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와 이중처벌이라는 지적뿐 아니라 조두순, 김근식의 사례처럼 지역 간 마찰이 첨예해질 수 있어서다.

법이 시행되면 미성년자 교육시설이 빽빽한 서울 등 대도시에서 살지 못하게 된 성범죄자가 지방으로 몰리는 풍선효과도 우려된다.

그렇게 되면 대도시는 법의 도입을 환영하겠지만 지방이나 낙후지역이 반발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농 간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 있다.

◇ "서울 보호법이냐"…풍선효과에 지방 반발 '불 보듯'
법무부 개정안대로 시행되면 고위험 성범죄자는 학교, 유치원 등 교육시설에서 최대 500m 범위 내 살 수 없다.

사실상 대도시에서는 살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형 제시카법이 '서울 보호법'이라는 반발이 벌써 나오는 이유다.

법무부의 제시카법 추진을 바라보는 수도권과 지방 주민 간 시각차는 확연했다.

경북 포항에 사는 김모(57)씨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치안시스템이 잘 갖춰졌지만 시골은 폐쇄회로(CC)TV조차 없는 곳이 많다.

중소도시나 시골의 열악한 사정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또 "지금도 애 낳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다 서울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이러면 더더욱 아이를 키우기가 어려워질 것 같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법이 시행되면 서울에 비해 그렇지 않아도 치안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이 범죄 위험까지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경남 김해에 사는 박모(25)씨도 "그냥 지방으로 성범죄자를 전가하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법이 가져오는 효과에 비해 지방 사람들이 겪는 피해가 너무 크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수도권 주민들은 법이 시행되면 주거지역이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김수현(27)씨는 "보호해야 하는 아동이 서울에 밀집해 있을 뿐인데, 무작정 '서울중심주의'로 보는 시각은 불편하다"고 반박했다.

양천구 주민 박모(35)씨도 "지방 학부모들도 법안에 찬성할 것으로 생각한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 성범죄자가 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형 제시카법] 서울보호법?…"성범죄자 지방에 떠넘기나"
◇ '제2의 보호감호'…위헌 가능성 지적
법조계에선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제시카법을 두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과거 보호감호제도처럼 성범죄자에 대한 이중처벌이라는 지적이다.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형을 모두 채우고 나온 이를 대상으로 보호감호제도처럼 형기를 영구히 늘리게 되는 셈이라 위헌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캘리포니아의 제시카법이 가석방된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지켜야 할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는 의견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법이 시행되면 성범죄자는 농어촌·산간지역 등에만 거주해야 하고 경제활동이 제한돼 생계유지도 힘들어진다"며 "감내하기 어려운 극심한 피해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법을 시행하더라도 재범 방지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차 교수는 "거주지를 제한해도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은 면적이 작고 교통이 발달해 어디든 하루 만에 갈 수 있다"며 "되레 (성범죄자가 사는) 지역 주민과 동네를 낙인찍고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동욱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도 "성범죄자가 이사하고 이동할 때마다 누가, 어떻게 감시할 것인지 현실적인 대책이 없다"며 제시카법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의견을 냈다.

이어 "전자발찌가 도입된 지 10년 가까이 되는데, 성범죄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도 의문"이라며 "성범죄자를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하려면 형량을 높이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원조'인 미국 플로리다주의 제시카법은 만 12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아동 성범죄자에 징역 25년, 캘리포니아주는 만 14세 미만 대상 성범죄자에 최저 징역 15년의 형량 하한선을 명시했다.

이번에 법무부가 발표한 한국형 제시카법은 전자장치부착법을 개정하는 안이어서 형량 상향을 담지 못했다.

[한국형 제시카법] 서울보호법?…"성범죄자 지방에 떠넘기나"
◇ 제도 정착하려면…"한국적 특성 고려해야"
법무부의 개정안에 따르면 성범죄자에 대한 제시카법 적용 여부와 거주 제한 거리는 법원의 결정에 따른다.

전문가들은 거주 제한 거리를 결정할 때 재범 위험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재범 위험성 판단 기준이 중요해진다"며 "수형 생활과 그 전의 범죄 유형, 상습성, 반복성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우리나라는 여러 사회적인 여건이 다르다"며 "국토의 크기, 인구의 밀집도 등을 차이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 주민들이 우려하는 것만큼 부작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자장치부착법과 '성범죄자 알림e'를 도입할 때도 가장 우려됐던 게 '게토화' 현상이었으나 우려하는 만큼 지방이 고립되는 일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도 "법원에서 차등적으로 거리를 결정하기 때문에 서울 밖으로 나가 살아야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며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