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영업사원' 대통령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생전에 ‘톱 세일즈맨’을 자처했다. 2017년 2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때 그 유명한 19초짜리 ‘굴욕 악수’를 당하고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 후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라운딩, 네 차례의 식사를 같이 하며 계속 웃었고, 마지막 날 1조달러 규모의 뉴욕~워싱턴DC 간 자기부상 열차 사업에 일본 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공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그는 일본 역대 총리 중 가장 해외를 많이 돌며 세일즈 외교를 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첫 아시아 순방 때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찾았다. 46시간의 짧은 체류시간 중 정상회담과 군부대 방문 일정을 빼고는 모두 기업 관련 일정으로 채웠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로부터 220억달러의 투자 약속을 받고 흡족한 표정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블랙홀’처럼 해외 투자를 빨아들인 성과 등을 평가받아 예상을 뒤엎고 중간선거에서 사실상 승리했다.

경제가 곧 안보인 ‘빅 블러(Big Blur)’ 시대다. 경제 외교가 각국 정상에게 안보만큼 중요한 핵심 과제가 됐다. 각국 정상이 해외 순방 때마다 경제 관련 행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지금 스위스 다보스에서 52개국 정상(급 인사)이 600여 명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 치열한 투자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일상화한 세일즈 정상 외교의 단면일 뿐이다.

마침 한국에 낭보가 들려왔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원전과 방산·에너지 분야 등에서 한국에 300억달러(약 37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는 소식이다.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주로 닦은 양국 간 신뢰 관계가 대규모 투자로 꽃을 피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성과를 자축하면서 동행한 130여 명의 기업인에게 “저는 대한민국의 영업사원” “기업인들을 업고 다니겠다” “공무원들은 기업에 대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선 현장 공무원까지 그런 마음이라면 세일즈 외교 성과가 지금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커지고 규제 완화도 더 속도가 날 것 같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