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랭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왼쪽)가 코크연구소 집무실에서 한국경제미디어그룹 취재진, 김성재 서울대 공대 교수(오른쪽)에게 모더나 창업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랭거 교수 뒤편엔 버락 오바마,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 등이 수여한 상장이 빼곡히 걸려 있다.  /김성진 한경TV PD
로버트 랭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왼쪽)가 코크연구소 집무실에서 한국경제미디어그룹 취재진, 김성재 서울대 공대 교수(오른쪽)에게 모더나 창업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랭거 교수 뒤편엔 버락 오바마,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 등이 수여한 상장이 빼곡히 걸려 있다. /김성진 한경TV PD
생명공학 분야 에디슨, 40여 개 기업을 창업한 ‘연쇄창업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논문이 인용된 과학자…. 로버트 랭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74·사진)를 수식하는 말이다. 국내엔 모더나 창업자로 알려진 그는 보스턴에선 ‘바이오 혁신 창업의 구심점’으로 꼽힌다.

미국 MIT 코크연구소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최근 찾았다. ‘데스밸리’로도 불리는 기초 의학과 산업화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비결을 듣기 위해서다. 랭거 교수가 내놓은 답은 ‘실패를 피하지 않는 것’이었다. 과학기술, 특허, 자금 조성 등 여러 분야 팀워크가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가 창업에 관여한 기업들의 추정 가치는 33조원. 칠순을 훌쩍 넘긴 그는 여전히 또 다른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48년간 약물전달 연구 매진

'바이오계 에디슨' 랭거…"과학자에게 창업은 세상 바꿀 기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큰일을 하라.’ 랭거 교수가 연구실을 떠나는 제자에게 건네는 인사다. 1500편 넘는 과학 논문에 저자로 참여하고 특허만 1400개 출원한 그의 연구 초점은 실험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연구소를 넘어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가 제약·바이오기업 등에 기술이전을 한 것은 400차례가 넘는다. 랭거 교수는 “분자 전달 나노입자 연구는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통해 수십억 명이 쓸 수 있게 됐고, 조직과 장기를 만드는 아이디어는 화상 환자를 위한 인공피부 등으로 활용된다”며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과학자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랭거 교수는 1974년부터 약물전달기술(DDS) 연구에 집중해왔다. 당시엔 실용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모더나 창업에 참여했던 2010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라는 판단에 따라 기술에 집중했다. 모더나의 성공으로 그의 자산가치는 2조4000억원까지 불었다. 포브스가 선정한 10억달러 자산가 반열에 올랐다. 그는 “기초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도 좋지만 연구실에선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작다”며 “과학자에게 창업은 훌륭한 기회이자 경험”이라고 했다.

“mRNA 암·희귀질환 치료에 활용”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랭거 교수는 사람을 꼽았다. 그는 “창업에 참여한 기업 중 실패한 두세 곳의 원인을 찾자면 ‘함께한 사람’이 달랐다”며 “실패한 기업은 비전이 부족하거나 역량이 부족한 사람과 함께했던 것”이라고 했다. 랭거 교수는 MIT에 있지만 자본시장, 기업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대학 실험실에 있는 그에게 투자자는 최고경영자(CEO) 등 인재를 확보해주고 기업 경영을 위해 유용한 조언을 해준다.

국내에선 창업 교수가 기업 성쇠를 모두 책임지는 문화 탓에 기술 창업 문화가 경직됐다는 지적이 많다.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랭거 교수는 “듀퐁은 세 번 파산을 겪었고 허쉬는 사탕가게를 열기까지 6~7번 실패했다”며 “하지만 계속 도전했고 지금의 허쉬를 일궜다”고 했다. 그는 “그 꿈이 사탕을 만드는 것이든, 약을 개발하는 것이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했다.

랭거 교수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빌게이츠재단과 새 나노입자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세포가 잘 자라는 소재 등을 활용해 췌장, 척추, 혈관 등을 만드는 조직공학 연구도 하고 있다. 그는 “mRNA 기술은 진화하면서 암, 희귀질환 등 무한한(unlimited) 치료법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창업도 준비 중이다. 위장질환, 비만 치료 등에 쓸 수 있는 새로운 젤 타입의 약물전달 물질을 기반으로 한 회사다. 약효를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업도 준비 중이다. 한국 기업과도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는 에이비프로바이오, 맵스젠, 지뉴브, 진메디신 등 4개 기업을 꼽았다.

케임브리지(미국)=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