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승인 지연,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론스타 주장 인용
매각 가격 인하 부분, '주가조작 유죄' 론스타 책임 절반 과실상계
여타 쟁점 정부 판정승…'심사 지연은 론스타가 자초' 소수 의견도
외환銀 매각지연 인정…'주가조작' 론스타 책임도 50%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국제투자 분쟁을 심리한 중재판정부는 외환은행 매각 지연 과정에 한국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매각 가격 인하로 인한 손해에는 관련 주가조작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론스타 측의 책임도 있다고 판단해 청구의 일부만을 인용했다.

◇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 인정…'주가조작 귀책' 고려해 과실상계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는 31일 우리 정부에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의 4.6%인 2억1천650만 달러(약 2천800억원·환율 1,300원 기준)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중재의 핵심 쟁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이 한차례 무산되고 뒤늦게 이뤄지는 과정에 한국 정부의 책임이 있는지였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천834억 원에 사들인 뒤 여러 회사와 매각 협상을 벌이다가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천157억 원에 되팔았다.

막대한 이득을 거뒀음에도 론스타는 매각 과정에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이익금이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2007∼2008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매각 협상 과정에서 금융위원회가 규정된 심사 기간 내에 승인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매각이 무산됐고, 이후 하나금융지주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매각해 손해를 봤다는 취지다.

론스타는 또 2011∼2012년 하나금융과의 협상 과정에서도 정부가 승인을 지연하고, 매각 가격을 인하하도록 부당하게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규정된 매각 승인 심사 기간은 권고에 불과하며, 당시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다고 반박했다.

론스타 측은 당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의 피의자로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았다.

대검 중수부는 대대적인 수사 끝에 두 사건 모두 관련자들을 기소했고, 이 중 주가조작 의혹은 유죄가 확정됐다.

당시 수사팀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포함돼 있었다.

정부는 이처럼 론스타가 형사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후 외환은행 주가가 하락한 점을 반영해 하나금융과 론스타가 매각 가격을 재협상했을 뿐 정부는 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중재판정부는 우리 금융당국이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한 행위는 권한 내 행위가 아니므로,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며 론스타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다만 외환은행 매각가격 인하에는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영향도 있다고 보고 론스타 측 책임을 50% 인정했다.

이에 따라 인하된 매각 가격의 절반인 2억 1천650만 달러만을 우리 정부의 배상금으로 인정했다.

판정부 3명 중 1명은 아예 우리 정부에 책임이 없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외환카드 주가조작으로 인한 유죄판결로 금융당국의 승인 심사가 지연됐으니 그 책임은 오롯이 론스타에 있다는 얘기다.
외환銀 매각지연 인정…'주가조작' 론스타 책임도 50%
◇ 청구 손해액·조세 쟁점도 정부 勝…"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 검토"
청구 손해액을 둘러싼 양측의 공방에서는 우리 정부의 주장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론스타는 매각 가격 인하로 인한 손해액에 향후 부과될 수 있는 한국 및 벨기에의 세금 약 21억8천850만 달러까지 더해 총 46억7천950만 달러를 청구했다.

중재판정 제기 뒤인 2013년 9월부터 완제일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에 따른 이자 및 기타 법률비용 및 중재 비용 지급도 청구했다.

정부는 손해액은 실제 계약금액이 아닌 당시의 시장 거래가격 등을 기준으로 산정돼야 하며, 인수 승인 지연과 HSBC 매각 결렬로 인한 손해는 론스타가 자초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세금 부과 여부 및 액수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세금을 청구액에 포함하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미래에 부과될 세금까지 고려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며 이 부분에 대한 론스타 측 청구를 기각했다.

실제 지급 판정이 난 배상금 역시 청구액의 4.6%인 2억1천65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외 대부분 쟁점에서도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중재판정부는 2011년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이 발효된 2011년 3월 이전의 정부 조치 및 행위에 대해서는 관할이 없다고 봤다.

일부 관할이 있는 조세 청구의 경우도 우리 정부의 과세처분에 투자보장 협정상 자의적·차별적 대우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판정 결과와 관련해 "정부는 론스타와 관련된 행정조치를 함에 있어 국제법규와 조약에 따라 차별 없이 공정·공평하게 대우했다는 일관된 입장"이라며 "향후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을 검토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