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진짜 공정은 무엇인가
고교 동창 다섯 명이 모였다. 술이 한 순배 돌자 A가 운을 뗐다. 주식, 코인 투자 빚도 탕감해준다는 ‘개인회생 준칙’이 도마에 올랐다. “법원은 빚에 짓눌린 청년들의 재기를 위한다고 하지만 도덕적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카드사, 은행 등 채권 금융회사들이 졸지에 ‘호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빚투하기 좋은 세상이야. 깡통 차면 변제금에서 빼달라고 읍소하면 되잖아. 변호사들만 신나게 생겼어.”

B가 바통을 받았다.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나온 금융부문 민생 안정 대책도 마찬가지야. 불공정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야.” 자영업자, 소상공인, 청년층 부채를 최고 90%까지 탕감해주는 정부 긴급 대책 얘기다. 규모가 125조원을 웃도는 프로젝트다. 정부는 이 중 30조원을 부실 대출채권을 사들여 빚을 탕감해주는 데 쓴다고 했다. B는 “그 빚이 먹고사는 생계 때문인 건지, 인생 대박을 꿈꾸다 쪽박을 찬 빚투인지 상관없이 혈세를 쏟아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청년 부채 탕감 불공정 논란

그 많은 사람 중 청년들에게만 특별대우를 해주느냐는 불만도 나왔다. 역차별, 불공정 시비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동창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C가 생각을 보탰다. “그건 국가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일 수도 있잖아. 초고금리 때문에 다 죽게 생긴 특별한 상황이니 말이야.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클 경우라는 나름의 회생 판단 기준이 있으니, 채권자만 손해는 아닌 듯하고. 난 더 심각한 게 특별사면이라고 봐. 일반 범죄자 사면에 정치인을 슬쩍 끼워넣는 거, 이게 불공정 아닌가?”

특정일을 기해 많은 이들의 죄를 한꺼번에 면해주거나 깎아주는, 해마다 공정 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이맘때의 연례행사 얘기다. “룰을 지키는 자가 손해 본다는 인식을 확산시킨 불공정 정치쇼의 상징”이라는 게 C의 비판이다. 교통법규 위반 사면은 그중에서도 으뜸이라는 게 그의 생각. 대다수가 반긴다면, 좋은 일 아닐까.

“칼같이 법규를 지킨 사람들은 뭐가 되냐 이거야. 사면되면 위반자나 깨끗했던 사람이나 다 똑같잖아.”

정부는 생계를 위해 영업용 화물차, 배달용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교통 법규를 어겼다는 이유로 서민들의 벌점을 면해주곤 했다. 문제는 생계형 위반 여부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C는 “룰 위반 책임에 지위고하가 어딨고, 빈부가 어딨냐. 정치 흥정 대상으로 삼는 것부터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묵묵히 룰 지킨 시민 보듬을 때

그러고 보니 늘 그랬다. 정치는 입만 열면 ‘약자와 서민, 민생’을 외친다. 코로나 지원금을 뿌릴 때도, 입맛대로 특별사면을 할 때도 그랬다. 묵묵히 법규를 챙기고, 질서를 지키며, 빚을 갚아온 이들은 정책에서 소외된 지 오래다.

잠자코 듣던 D가 결국 거품을 물었다. “한마디만 할게. 교통사범 사면은 해줘도 좋아. 근데 10년 철석같이 교통신호 지킨 나한테는 상을 줘도 시원찮은데, 가점제도가 없단 말이야. 실수로 속도위반 한 번 했더니 곧바로 벌점을 주더라고. 대출 탕감도 그래. 잘 갚고 빚 안 지겠다고 발버둥친 사람들부터 먼저 혜택을 주는 게 순서라고 봐. 왜 위험 투자한 이들의 부실을 안전 투자한 이들 돈으로 메워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딱히 대거리를 찾지 못한 사이, 한 친구가 말했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는 옛말이 틀림없는 듯하다”고. “이젠 묵묵히 지키는 이들부터 젖을 줘야지. 그게 진짜 공정한 거 아냐?” 동창 다섯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