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의 Fin토크] 비트코인 줘도 안 받는다는 버핏
“세상 모든 비트코인을 25달러에 준다고 해도 난 안 받는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사진)의 ‘비트코인 저격 어록’에 또 한 문장이 추가됐다. 지난달 30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투자자들은 암호화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고, 버핏의 답은 예상대로였다. 버핏은 과거에도 비트코인을 “쥐약의 제곱” “투자가 아닌 투기” “고유한 가치가 전혀 없는 망상”으로 비판한 이력이 있다.

비트코인이 내재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찬반 진영의 입장이 결코 좁혀지지 않는 논쟁거리다. 버핏은 철저히 후자 쪽이다. 그는 비트코인을 아무런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면서 ‘마술’로 사람을 홀리는 비생산적 자산으로 규정했다. 농장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아파트는 임대료를 벌게 해주지만, 코인은 나보다 비싼 값에 사줄 누군가에게 파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코인은 망상, 블록체인은 진짜"

버핏은 실제로 비트코인을 ‘줘도 안 받은’ 적이 있다. 2년 전 트론이라는 코인을 만들어 억만장자가 된 저스틴 선이 ‘버핏과의 식사’를 450만달러(약 57억원)에 낙찰받았다. 선은 갤럭시 폴드에 내장된 암호화폐 지갑에 비트코인 1개, 트론 193만830개, 비트토렌트 100개 등을 담아 버핏에게 선물했다. 이 지갑의 거래 기록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데, 버핏이 털끝 하나 건드린 흔적 없이 방치돼 있다.

당시 버핏과 마주 앉은 선은 “비트코인은 다음 세대의 통화”라며 “당신은 비트코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손주들은 그럴 것”이라고 설득했다. 버핏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내 손자는 내 재산을 달러화로 상속받길 원할 것이다.”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이런 버핏을 ‘달라진 세상을 못 쫓아가는 기득권 세력’으로 깎아내리곤 한다. 가상자산에 우호적인 브라질 은행 누뱅크에 벅셔해서웨이가 투자한 점을 들어 ‘내로남불’로 몰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블록체인 자체는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블록체인은 결제의 미래를 혁신할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지만, 그 가치가 비트코인에 온전히 반영된 것은 아니라는 게 버핏의 생각이다. 비트코인을 ‘사기’로 비난하면서도 “블록체인은 진짜일 수 있다”고 말한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처럼 투자업계 대가 중에 버핏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암호화폐의 쓸모' 보여줘야

수백만 코린이(코인 초보 투자자)를 양산한 ‘코인 광풍 시즌2’가 저물고 있다. 나스닥이 하루에 4% 빠질 때 비트코인은 10% 내려앉았다. 위험자산 시장이 휘청이는 가운데 증시보다 세 배 빠른 속도(24시간 거래)로 돌아간다는 코인판은 녹아내리는 수준이다. 유명 기업이 가상자산 사업에 진출한다는 ‘호재’도 일론 머스크의 ‘말발’도 안 먹힌다. 암호화폐업계도 한동안 보릿고개를 각오하는 분위기다. 이더리움 창업자 비탈릭 부테린의 말처럼 “부실 프로젝트가 난립하던 코인시장에서 옥석(玉石)이 가려지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시즌은 암호화폐 산업에 몇 가지 의미 있는 이정표도 남겼다. 코인베이스와 두나무 같은 신흥 대기업이 탄생했고, 비트코인이 상장지수펀드(ETF)와 법정화폐에 결합하는 실험도 성사됐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미래 기술인 것은 알겠는데, 코인은 우리 삶에 어떤 효용을 주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했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금융이 바뀌고 세상도 투명해진다던데, 왜 주위에는 ‘떡상’과 ‘떡락’에 울고 웃는 개미뿐일까. 그토록 정부와 금융 시스템을 문제 삼으면서 정부로부터 법적 지위를 인정받길 원하고, 대형 금융회사의 투자를 갈망하는 암호화폐업계의 모순은 왜 심해질까.

이번 암호화폐 광풍에서 상당수 투자자가 쓴맛을 봤지만 코인 개발사와 거래소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곳간이 넉넉해졌으니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갈고닦아 보여줄 차례다. 대중이 가치를 인정하는 날엔 버핏의 생각도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