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을 ‘신약 명가(名家)’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혁신신약이 아닌 개량신약이었다. 주인공은 2009년 국산 1호 개량신약으로 태어난 고혈압치료제 ‘아모잘탄’. 기존에 팔리던 고혈압치료제 성분 2개(암로디핀+로사르탄)를 하나로 합친 이 약은 뛰어난 효능과 편의성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더니, 지난해 국내 최초로 누적 처방액 1조원 벽마저 깼다. 아모잘탄으로 벌어들인 돈은 혁신신약 연구개발(R&D)에 대거 투입됐고, ‘국내 최대 신약 후보물질 보유 기업’(30개)이란 타이틀을 한미약품에 안겨줬다.

한미약품이 선보인 ‘한국형 R&D 전략’의 출발점이 된 아모잘탄이 중국에 상륙한다. 한국에서 검증된 효능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고혈압 시장을 공략해 ‘제2의 성공 스토리’를 그린다는 구상이다.

○중국 고혈압 시장 ‘정조준’

1조 넘게 팔린 고혈압 개량신약…한미약품, 세계 최대 中시장 도전
한미약품은 중국 국가의약품감독관리국(NMPA)으로부터 아모잘탄 시판 허가를 받았다고 10일 밝혔다. 준비 작업을 거쳐 오는 10월 중국 전역에 출시할 계획이다. 마케팅과 판매는 중국법인인 북경한미약품이 맡는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북경한미약품 매출의 80~90%는 어린이 의약품에서 나온다”며 “그동안 쌓은 현지 내과 병·의원 네트워크를 활용해 아모잘탄 판매망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출시한 지 14년 된 아모잘탄이 중국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 고혈압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데다 아모잘탄은 같은 동양인인 한국에서 검증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2억6688만 명이었던 중국 고혈압 환자는 2019년 3억8000만 명 안팎으로 불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255억원어치가 처방된 아모잘탄(계열 약품 포함)과 함께 ‘양대 효자’로 꼽히는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1232억원) 허가 신청도 조만간 중국 보건당국에 낼 계획이다.

○신약 성과도 잇따라

한미약품은 이날 자체 개발 중인 ‘랩스 트리플 아고니스트’(HM15211)가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원발 담즙성 담관염 치료를 위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의 전체 희귀의약품 지정 건수는 6개 후보물질, 10개 적응증, 19건(미국 식품의약국 9건, EMA 7건,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3건)으로 불었다. 국내 제약사 중 가장 많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아모잘탄 등 개량신약으로 벌어들인 돈을 10년 넘게 혁신신약 개발에 투입한 게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자체 수입으로 R&D 비용을 충당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 덕분에 장기 투자가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매출(1조2031억원)의 12.8%인 1545억원을 R&D에 투입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는 국내 제약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영업이익을 1254억원이나 냈다. 이 덕분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461억원에서 2092억원으로 늘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연내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와 폐암치료제 ‘포지오티닙’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시판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개량신약으로 거둔 수익으로 혁신신약 개발 비용을 충당하는 ‘한미약품식 R&D 전략’의 성과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