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뇌가 있는 풍경] 이타심은 어떻게 생겨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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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심은 원래 사람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여러 실험을 통해 동물에게도 이타심이 있음이 밝혀졌다. 케이지 안에 있는 손잡이를 누르면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는 동시에 옆 케이지의 다른 원숭이에게는 전기충격을 주도록 하는 실험이 있다. 이를 알게 된 원숭이는 음식을 얻기 위한 손잡이를 더 이상 누르지 않았다. 쥐 역시 맛있는 먹이를 찾기보다 트랩에 갇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다른 쥐를 우선 구한다. 돌고래들이 그물에 걸린 동료를 도와주거나, 코끼리가 힘이 약한 동료를 일으키는 등 동물의 이타성은 자연에서도 어렵지 않게 관찰된다.
진정한 이타 행동이란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자의 복지를 위해 능동적 의도로 수행하는 행동이다. 이는 인간사회에서 큰 미덕으로 칭송된다. ‘자리이타(自利利他)’ ‘네 이웃을 네 몸같이 하라’ 등의 말처럼, 주요 종교는 모두 이타심을 권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자기 생존과 번식을 최고 목표로 삼는다. 삶이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판단의 연속이다. 이런 진화심리학·경제학 등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이타심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타심은 과연 어떻게 생겨날까?
희생하면 뇌에서 옥시토신 분비
봉사할수록 건강하게 오래 살아
이타적 행동이 만족감·뿌듯함 같은 추상적인 보상을 넘어서 실제 혜택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울·불안증 발병률 감소 등 정신건강 증진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 개선, 나아가 수명 연장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55세 이상 성인 중 다양한 자원봉사를 하는 그룹과 아닌 그룹을 장기간 비교했더니,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그룹에서 사망률이 63% 줄어들었다. 건강한 사람이 봉사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실험 전 평가한 건강 상태를 참작해 분석해봐도 사망률이 44% 이상 줄어들었다. 건강해서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자원봉사를 많이 해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의미다.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은 문학작품의 단골 주제다.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단두대에도 오른다. 실제로 이타적 행동을 수행한 그룹에서 통증 반응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연구가 있다. 뇌에서 통증 회로의 반응이 줄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타적 행동을 할 때의 뇌를 자기공명촬영(MRI)하면 보상, 공감 능력, 정서 조절, 평판 대응, 정신 집중 등에 관여하는 다양한 뇌 부위들이 활발하게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쥐의 뇌 전대상피질에서 옥시토신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보고도 있다. 전대상피질은 공감 능력을 관장하고, 옥시토신은 관심과 배려에 중요한 호르몬이다. 요컨대 이타심도 뇌 기능의 산물인 것이다.
사람은 이타적 행위를 하면서 생의 의미를 실감한다. 인생에 가치를 느끼고 목표와 방향을 얻는다. 그렇기에 인생의 방향에 부합해 나아가는 길은 힘차고, 고통도 장애가 되지 않고, 극단적인 경우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타적 행동의 대상은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국가,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웅, 순교자를 배출했다. 마음의 평안과 충만함 속에서 의연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기심·이타심의 논의를 뛰어넘는 감동을 일으킨다.
신희섭 IBS 명예연구위원·에스엘바이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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