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에 있는 한 백화점 앞에서 샤넬 매장 입장을 기다리는 고객들이 긴 줄을 선 채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안혜원 기자
서울 잠실에 있는 한 백화점 앞에서 샤넬 매장 입장을 기다리는 고객들이 긴 줄을 선 채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안혜원 기자
지난 5일 오전 8시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앞. 문이 굳게 닫힌 명품관 인근에 수십 명이 줄 서 있었다. 두 시간 뒤인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샤넬·에르메스 등 명품 매장 입장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대기 줄이었다. 곳곳에 간이 의자와 돗자리, 추위를 쫓기 위한 휴대용 난로 등을 준비한 이들이 눈에 띄었다.

줄 서 있던 30대 박모 씨는 “7시에 왔는데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4월 결혼을 앞두고 프로포즈 하려고 샤넬 백을 사야 하는데 오늘도 허탕칠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오픈런을 세 번째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남 진주에서 올라온 김모 씨(29)도 여러 차례 오픈런을 한 경험자다. 그는 “전날 인근 친구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나온다. 샤넬 WOC(wallet on chain) 백을 사고 싶은데 재고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줄 선 사람들 사이에선 평소보다 대기 줄이 길어졌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날 영하 10도 안팎의 한파가 기승을 부렸지만, 연초부터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을 올릴 것으로 전해지면서 샤넬·루이비통·디올 등 브랜드의 ‘막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국내 한 에르메스 매장 전경. /한경DB
국내 한 에르메스 매장 전경. /한경DB
에르메스, 롤렉스 등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새해 벽두부터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에르메스는 전날 가격을 5~10%가량 상향 조정했다. 지난해 1월 가격 인상 후 1년여 만이다. 선호도가 높은 가방 제품 ‘린디26’의 경우 기존 981만원에서 42만원(5%) 오른 1023만원으로 1000만원을 넘었다. 에르메스 제품 가운데 중저가 라인인 ‘피코탄22’도 기존 385만원에서 411만원으로 7% 올랐다. 앞서 롤렉스도 2년 만에 가격을 8~16%가량 인상했다.

명품들의 역대급 인상 소식에 따른 반응은 제각각이다. 주요 명품 업체들은 가격 인상에 대해 공식 답변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 가격 인상이 확실한지에 대한 문의가 가장 많았다. 큰 폭의 인상이 예상돼 값이 뛰기 전 구매하러 가겠다는 의견도 있는 반면 잦은 가격 인상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가격 인상해도 무방하니 물량이 많이 풀렸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에 연차를 내고 에르메스 피코탄 가방을 사러 나왔다는 30대 회사원 최모 씨는 “가격이 올랐으니 구매 경쟁이 줄지 않을까 기대하고 왔지만 오르기 전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며 “어차피 매장에서 가방을 못 사면 ‘플미’(웃돈·프리미엄)을 주고 사야한다. 가격은 상관없으니 원하는 제품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시내 샤넬 매장 진열창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샤넬 매장 진열창 모습. /연합뉴스
명품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젠 샤넬이 값을 올릴 차례”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샤넬 역시 올 상반기 중, 이르면 다음달쯤 가격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이달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 가격을 올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국내 매장에는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판매 직원(셀러)들에게서 나온 인상 소식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인상이 이뤄진다면 한국도 가격 인상이 확실시 된다는 게 국내 명품 업계의 전망이다. 글로벌 가격 정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샤넬은 지난해 2월, 7월, 9월, 11월 총 네 차례에 걸쳐 가격을 6~36% 가량 인상한 바 있다. 샤넬 제품을 사들인 후 되파는 리셀업자 윤모 씨(25)는 “또 인상되면 보이백, 뉴미니 등 지난 11월 오르지 않았던 제품인 위주로 값이 오를 것 같아 서울 시내 매장을 돌며 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오픈런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무조건 하루라도 빨리 구매하는 게 이득이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