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 칼럼] 아이들 보기 참 부끄러운 선거
우리나라에선 초등학교 5~6학년 때 처음 ‘선거’에 대해 배운다.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서에서 헌법 내용을 소개하면서 기본권으로서의 참정권과 선거권을 언급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땐 우리나라의 정치발전과 민주주의를 다루면서 국민이 자신을 대표할 사람을 직접 뽑는 선거를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으로 부른다고 설명한다. 학생들은 수업뿐 아니라 학급 반장, 전교 회장을 뽑으면서 실전 선거를 경험한다. 입후보한 친구들이 공약을 내걸고, 이를 비교해 뽑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대의민주주의를 익힌다. 그리고 만 18세가 넘으면 누구나 자기 판단에 따라 ‘국민의 대표자’를 뽑게 된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선거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신성한 절차’다. 현실에서도 제도, 절차 등 형식적인 면에선 별문제가 없다. 선거의 4대 원칙(보통·평등·직접·비밀투표 원칙)에 따라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을 선출한다. 그런데 국민이 투표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펼쳐지는 선거전은 전혀 아름답지가 않다. 이번 대선은 특히 여야 후보 간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하다. 선거운동이 격해지다 보면 상대 약점 들추기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양측 모두 본인은 물론 가족문제까지 이처럼 시끄러운 선거는 없었던 것 같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남 관련 불법 도박 논란과 성매매 의혹 등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고발 사주’ 논란에다 부인의 허위이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상대 진영 후보의 치부를 드러내고 자유롭게 욕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아이들에게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일반 국민은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사실과 거짓이 뒤섞인 채 폭로되고, 후보가 사실을 부인하다가 논란이 커지면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막장 드라마’, ‘역대급 비호감 선거’란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번 대선은 진작부터 ‘차악(次惡)’을 뽑는 선거라고들 했다. 두 후보의 골수 지지층은 어떤 의혹이 나와도 흔들리지 않겠지만, 중간지대 사람들은 선거 직전까지 터져나올 모든 의혹의 사실 여부를 보고 “더욱 돼선 안 될 후보를 안 찍겠다”고 역설적으로 얘기한다. 두 후보 모두 싫다는 2030 부동층이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젊은 세대 부동층은 한 달 새 20대가 29%에서 34%, 30대는 20%에서 27%로 각각 늘었다.

후보와 가족 검증도 필요하지만, 5년간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은 그 속에 파묻혀 그야말로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자극적 폭로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선거가 끝난 뒤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선거로 위임받은 ‘권력’이 펼치는 정책들임을 잊어선 안 된다. 어떤 추가 폭로가 나와도 어차피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 중 한 명이 대통령이 될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애써 공약으로 눈을 돌려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경제분야만 봐도 두 후보의 공약 모두 구체적이지 않고 인기영합에 급급하다는 평가다. 재정준칙에 대한 개념 없이 ‘돈풀기 공약’ 경쟁을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심지어 왔다갔다 한다. 부동산을 비롯한 주요 경제정책들은 향후 5년뿐 아니라 두고두고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다. 미래사회 주축이 될 10대와 20대가 받을 영향은 훨씬 크고 오래간다.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 쉽지 않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주요 과제들에 대해 대선주자들의 명확한 정책방향이 나와야 한다. 한층 복잡해지는 국제정세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펼쳐나갈지도 뚜렷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조금은 덜 후회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