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음식배달시장 1위 음식·식료품 배달기업 도어대시의 한 배달원이 자전거를 타고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도어대시 제공
미국 음식배달시장 1위 음식·식료품 배달기업 도어대시의 한 배달원이 자전거를 타고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도어대시 제공
세계적으로 음식·식료품 배달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인근 식당이나 유명 맛집의 조리된 음식을 30여 분 만에 배달하는 것을 뛰어넘어 이제는 10분 안에 필수 식자재나 신선식품, 편의점 물품 등 모든 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극세사 배달시장’이 형성될 기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유명 할리우드 영화 제목을 본떠 ‘캐치 뎀 이프 유 캔(Catch them if you can)’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빠르게 진화하는 세계 배달시장을 조명했다. 이들 배달기업을 초기에 발굴하기 위해 벤처캐피털(VC)의 공격적인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각축전 벌이는 세계 배달기업

21일 미국 배달기업 도어대시가 독일에서 인력 채용 공고를 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계 배달기업의 유럽 공략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배달시장의 55%를 차지하는 1위 기업이 유럽 배달 앱 시장에 첫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FT는 “원래 음식 배달업체인 도어대시는 점차 배달 품목을 다양화했고, 최근엔 전체 주문량의 7%가 화장지, 술 등 편의점 물품에 해당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며 “그런데 독일에는 비슷하게 편의점 배달 사업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 고릴라스와 플링크가 이미 있다”고 전했다. 이어 유럽 최대 식료품 배달기업인 게티르도 올 상반기 독일에 상륙할 예정이라면서 도어대시가 이들 기업과 치열한 각축전을 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미국 2위 배달기업 우버이츠(시장 점유율 31%)도 독일 공략을 통한 유럽 시장 확장을 선언했다. 독일 배달시장은 네덜란드 기업 저스트잇테이크어웨이가 2년 넘게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데, 2018년 저스트잇에 독일 사업 부문을 넘기고 떠난 딜리버리히어로도 지난 14일 고국으로의 사업 복귀를 공표했다. 지체 그로언 저스트잇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SNS에 “경쟁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며 딜리버리히어로의 귀환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또 다른 식료품 배달 스타트업 고퍼프도 지난 7일 영국 스타트업 팬시 인수를 발표하며 유럽 시장에 진출했다.

한편 유럽 기업인 저스트잇이 지난해 그럽허브(미국 시장 점유율 13%·3위 사업자) 인수에 나서며 미국 시장 확대에 공을 들였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1위 기업 그랩을 견제하기 위해 2위 승차공유·배달업체 고젝과 전자상거래기업 토코피디아가 합병해 고투그룹이라는 지주사를 설립한다고 지난 17일 발표했다.

투자자들도 앞다퉈 뛰어들어

유럽과 미국, 아시아 등 세계 배달기업이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소비자의 편의성만 증대된 게 아니다. 식료품 배달서비스 분야에 투자했던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도 잭팟을 터뜨리고 있다. 올 1분기 영국 딜리버루는 79억달러(약 8조9056억원) 규모 기업공개(IPO)에 성공했고, 인도 빅바스켓은 인도 대기업 타타에 13억달러에 팔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식료품 배달 분야는 약 140억달러의 투자금을 조달했다. FT는 “집앞 우유 배달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보잘것없어 보였던 배달 문화가 정보기술(IT)과 코로나19의 결합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알렉스 프레데릭 피치북 연구원은 “코로나19로 봉쇄된 소비자의 주문량이 늘어나고 기업은 증가한 고객 데이터를 토대로 서비스와 제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본 유치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식료품 배달 분야에는 올 1분기에만 10억1000만달러의 자금이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 영국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봉쇄 조치를 해제하는 국가가 속속 나오는데도 배달 수요는 견고하다는 방증인 셈이다. 지난 3월 게티르는 1억2800만달러를 조달한 지 두 달 만에 3억달러를 추가로 끌어들였다. 고릴라스는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2억9000만달러 모금에 성공했다. 스페인 글로보는 5억3570만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 미국 고퍼프는 11억5000만달러를 투자받으면서 몸값을 89억달러로 평가받았는데, 이는 전체 기업 가치가 반년 만에 두 배로 급증한 것이다.

배달시장의 더 큰 성장성을 기대하는 투자자는 뭉칫돈을 싸들고 경쟁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글로벌 VC인 블로섬캐피털의 오펠리아 브라운 투자운용역은 “더 초기 단계의 배달서비스기업에 막대한 자금이 쏟아지는 전무후무한 시기”라며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한 기업임에도 매우 유의미한 규모의 투자를 받은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블로섬캐피털은 지난해 말 영국 디자의 2000만달러 펀딩에 참여했는데, 당시 디자는 법인화되기도 전이었다. 디자가 딜리버루와 다른 물류 벤처기업 창업자 출신 인사가 세웠다는 배경만 믿고 베팅한 것이다.

장밋빛 전망에 대한 경고도

FT는 “11년 전 상장한 영국 최대 온라인 슈퍼마켓 오카도가 정기배달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있다는 점을 시장에 알려줬다면, 저스트잇 등 후발 주자들은 좀 더 즉흥적이거나 게으른 고객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집 근처 편의점에도 가기 귀찮아하는 소비자에게 ‘당신보다 빠르다’는 마케팅을 내세워 10분 만에 배달해 주는 고릴라스 같은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기업들은 더 빠른 배송을 위해 도심 한복판의 물류창고를 선점하려는 경쟁도 펼친다. 이른바 다크스토어(도심 내 소규모 창고형 매장)나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 같은 신개념 유통 공간이다. 푸드테크 초기 투자 전문가인 도미니크 로쉐는 “그동안 골목상점은 온라인 쇼핑몰의 침투에 면역력을 갖췄지만, 이제 이 잘 보호돼온 성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테크나비오에 따르면 식료품 배달서비스 시장 규모는 2024년 6318억4000만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 등이 2019년 “식료품 배달서비스 시장은 2030년에 3600억달러로 10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팬데믹을 겪으며 성장 기간은 단축되고 규모도 확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장밋빛 전망에 대한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글로보의 오스카르 피에르 CEO는 “몇 년 전 투자자가 열광했던 소셜커머스 그루폰이나 전기스쿠터 등의 시장이 급랭한 것과 같은 일이 재연될 것 같다”며 식료품 배달서비스 시장을 둘러싼 경쟁을 경계했다. 게티르와 미국 인스타카트 등에 투자한 또 다른 글로벌 VC 세콰이어캐피털의 파트너 마이클 모리츠는 “초기 단계 기업 중 대다수가 잔인한 교훈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