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앙은행(Fed)이 마침내 테이퍼링(자산매입액 축소)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시사했습니다. 19일(현지시간) 오후 2시 발표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Fed는 "상당수(A number of) 참석자는 만약 경제가 계속 목표를 향해 빠른 진전을 보이면 앞으로 개최할 회의의 어느 시점에 자산매입 속도의 조정 계획 논의를 시작하는 게 적절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전했습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달 28일 당시 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테이퍼링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걸 전혀 암시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회의에서는 일부 논의가 이뤄졌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날 흔들리던 뉴욕 금융시장은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약간 안정을 찾았습니다. 한 때 587포인트 폭락했던 다우는 164.62포인트, 0.48% 하락세로 마감됐고 S&P 500 지수는 0.29% 내렸습니다. 한 때 1.7%까지 급락했던 나스닥은 장 막판 거의 플러스로 회복하기도 했다가 0.03% 약보합으로 장을 끝냈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① 테이퍼링 논의가 하반기 시작된다는 건 이미 예상됐다

이날 오전 연 1.62%까지 떨어지기도 했던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Fed 회의록이 나온 뒤 1.69%까지 급히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곧 안정을 되찾아 1.67~1.68%에서 마감됐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Fed의 테이퍼링 시사에도 국채 금리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며 "여전히 1.6%대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예상된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오랜만에 90을 깨고 89.6까지 내려갔던 ICE 달러인덱스도 0.475% 오른 90.1 수준에서 마감됐습니다. 반등하긴 했지만 '테이퍼링 텐드럼'과 비교하면 반등폭은 미미했다는 분석입니다.

② 여러 가지 조건과 가정을 달아놓았다

이 관계자는 "Fed 회의록 문구를 보면 6~7월에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서도 "자세히 따져보면 여러 개의 조건과 가정이 달려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Fed는 '만약'(if) 경제가 '빠른'(rapid) 진전을 보인다면 '어느 시점'(at some point)에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begin discussing)하는 게 적절할 수도 있다(might be appropriate)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회의록은 또 "다수의 참가자는 경제가 상당한 추가 진전을 이루기까지 한동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덧붙였습니다.

③ 파월은 아닐 것이다

시장 일부에선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하는 게 적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 '상당수'(A number of) 중에 제롬 파월 의장이 포함되어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FOMC에서 점도표에 2022년 기준금리 인상을 찍은 4명과 로버트 카플란 댈러스연방은행 총재와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 등(이들이 점도표에 2022년 금리 인상을 찍었을 가능성도 높음)의 주장일 뿐 Fed 지도부로 FOMC 투표권을 가진 파월과 리처드 클라리다 부의장, 라엘 브레이너드 이사 등 핵심 인물들은 '상당수'에 속하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최근 발언을 분석하면 그럴 것이란 뜻입니다.

실제 불러드 총재는 이날 "Fed가 아직 정책 기조를 바꿀 때가 아니다"라면서도 "큰 변동성을 일으키지 않고 테이퍼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④ 4월 FOMC는 4월 고용지표 발표 전 이뤄졌다

4월 FOMC는 지난 4월27~28일 개최됐습니다. 예상을 훨씬 밑돌며 부진했던 4월 고용지표 발표 이전(5월7일)에 개최됐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4월 회의 때 위원들이 언급한 것은 그 의중을 약간 디스카운트해서 들어도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해석들이 나오면서 오후 3시가 넘어서자 확연히 저가매수가 유입됐습니다. 26이 넘었던 변동성지수(VIX)도 다시 21까지 떨어졌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Fed가 테이퍼링을 해야 할 필요는 점점 커지고 있다"며 "실시 시기는 내년 초가 될 수도 있지만 테이퍼링을 실시한다는 건 올해 안에는 확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무 많은 돈이 풀리면서 자산 버블이 생겨나고 있고 인플레이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뉴욕 금융시장에서 눈여겨볼 뉴스 중 하나는 역레포(reverse repo) 시장의 움직임이었습니다. 레포는 채권을 맡기고 돈을 빌려가는 구조이고, 역레포는 돈을 맡기고 채권을 빌려가는 구조입니다. 이날 43개 금융사가 294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빌려갔습니다. 단기 자금시장에 돈이 넘치다보니 나타난 일입니다. 은행들에 돈이 몰려들다보니 더 이상 지급준비금으로 갖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이렇게 많은 자금이 이곳저곳으로 흘러다니다 보면 결국 자산 버블을 부추길 수밖에 없습니다. 인플레이션 가능성도 커집니다. 이날 FOMC 회의록에서 위원들은 "자산 가격과 관련, 몇몇(several) 위원들은 금융시장의 위험선호 경향이 높아졌다. 주식 밸류에이션은 오르고 있고 신규상장(IPO) 움직임도 많다. 회사채의 위험 스프레드도 역사적으로 낮아졌다. 몇몇(a couple of) 참가자는 투자자의 위험 성향이 낮아지면 레버리지와 결합된 자산 가격의 하락이 실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유럽중앙은행에서도 경고가 나왔고 중국에서는 당국이 상품 가격의 ‘불합리한’ 상승을 억제하고 소비자로의 전이를 막기 위해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뒤 철광석과 석탄 가격이 각각 8% 떨어졌습니다.

이런 자산 버블에 대한 당국의 경고는 지난 4일 옐런의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부터 본격화됐습니다. 그리고 Fed가 금융안정보고서로 역시 높아진 자산 가격에 대해 경고했지요. 이런 당국의 경고가 이어지면서 버블이 형성됐던 태양광과 전기차(EV), 클라우드 등 테마주와 IPO,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관련주들은 급락했습니다.

이날도 곳곳에서 투기성 자산의 가격들은 급락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큰 그림에서 보면 투기 자산의 가격 하락은 기본적으로 이제부터 금융시장에서 쉬운 돈(easy money)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게 가장 크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먼저는 통화정책입니다. Fed는 이날 여러 가정을 깔면서도 테이퍼링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뉴욕은 이날 코로나 관련 강종 봉쇄 조치를 거의 다 풀고 정상화했습니다. 작년 3월 코로나 423일만입니다. 또 18일 기준 최근 1주일간 미국의 하루 평균 신규 코로나 감염자는 약 3만1200명으로 떨어졌습니다. 10여개 주에서는 10만명 당 신규 감염자가 100명 미만으로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가 빨리 회복되어 '상당한 추가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재정정책에서도 더 이상 많은 돈이 풀려나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날로 21개 주가 연방정부 실업급여 등 팬데믹으로 인해 추가 지급했던 실업급여를 6월 중 조기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실업급여가 근로자들의 직장 복귀를 막고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겁니다. 인프라딜의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4조 달러 규모가 모두 통과될 가능성은 적습니다. 또 일부가 통과된다고 해도 8년 이상에 걸쳐 중장기적으로 집행될 것입니다. 게다가 인프라딜 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 등 각종 증세까지 감안하면 돈이 더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돈이 빠져나가는 분위기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의 급락에서 가장 잘 느껴졌습니다. 증시에서 각종 테마주들이 모두 떨어질 때 강세를 유지해온 비트코인은 이날 한 때 3만 달러까지 폭락했다가 다시 4만 달러대로 복귀하는 등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미국 시간 오후 5시 현재는 3민800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3만 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두 달 전 6만4000달러에서 최대 55% 가량 내린 겁니다. 이에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주가는 200달러 초반까지 추락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배신, 그리고 중국 당국이 금융권에 가상화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 등까지 더해졌습니다.

3만 달러대 중반은 테슬라가 비트코인 편입을 발표했던 지난 2월 초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겁니다. 이날 머스크는 '테슬라는 다이아몬드핸즈'라는 트위터를 날렸습니다. '다이아몬드핸즈'는 게임스톱 사태 때 유명해진말로 '무조건 보유한다', '버티겠다'는 걸 뜻합니다. 테슬라는 비트코인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말이지요. 물론 냉소적 반응을 얻었습니다. 비트코인 하락세를 촉발한 장본인이 '웬 뜬금없는 트윗이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날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 TV에서 "비트코인이 5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여전히 기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코인베이스와 테슬라 주식 등을 추가 편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JP모간은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비트코인이 급락하기 한 달 전부터 기관들이 가상화폐 대신 금에 대한 투자 수요를 늘려왔다는 겁니다. 실제 금값은 이날 1892달러까지 급등했습니다.
지난 7~13일 실시된 뱅크오브아메리카의 5월 글로벌 펀드매니저 설문조사(FMS)를 보면 비트코인 매수는 '가장 인기가 높은 거래'로 꼽혔습니다. 응답자의 43%가 비트코인 매수를 쏠림이 가장 심한 거래로 든 겁니다. 비트코인은 지난 1월에도 가장 인기있는 거래로 지목됐으나 이후 석 달 동안은 '기술주 매수'가 이를 앞섰었습니다.

올해 이전에 ‘비트코인 매수’가 가장 쏠림이 심한 거래로 꼽힌 때는 2017년 12월이었습니다. 당시 비트코인은 2만 달러에 육박할 정도까지 급등했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1월부터 폭락하기 시작해 1년 뒤인 2018년 12월에는 3000달러대 후반까지 떨어졌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