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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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게임스톱발(發) ‘공매도 전쟁’이 한국에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 비중이 높은 셀트리온에이치엘비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들 종목 주가는 치솟았다. 하지만 이를 틈탄 시세조종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외인, 셀트리온 공매도 쇼트커버 돌입

1일 셀트리온은 14.51% 오른 37만1000원에 마감했다. 에이치엘비도 7.22% 올랐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대표하는 두 바이오업체 주가가 나란히 오른 건 ‘한국판 게임스톱’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판 게임스톱'?…셀트리온·에이치엘비 급등
이날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공매도에 대항한 미국 게임스톱 주주들의 방식을 따라 국내에서도 반(反)공매도 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한투연은 “대표적 공매도 피해 기업인 셀트리온과 에이치엘비 주주연대가 연합해 공매도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공매도 잔액이 2조1464억원(지난달 27일 기준)에 달한다. 공매도 잔액 1위다. 에이치엘비는 코스닥시장에서 가장 많은 3138억원의 공매도 잔액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날 두 종목의 급등을 전적으로 개인의 매수세가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인은 셀트리온을 4300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오히려 외국인이 가장 많은 3524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외국인의 셀트리온 순매수 규모는 2위인 LG화학(640억원)의 다섯 배가 넘는다.

이날 셀트리온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램시마SC’가 캐나다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았고, 코로나19 치료제가 국내 승인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호재가 됐다. 하지만 공매도 영향도 있었다. 이한영 D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셀트리온 주가 상승이 예상되자 공매도 물량을 갖고 있는 외국인이 골드만삭스 창구 등을 통해 공매도한 주식을 갚기 위해 주식을 다시 사들이는 ‘쇼트커버링’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호재가 없는 에이치엘비와 헬릭스미스(18.13%) 등 다른 바이오주가 덩달아 급등한 데는 개미들의 공매도 전쟁 선포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들이 이들 종목을 타깃으로 지목하자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선제적으로 공매도 포지션 정리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정 종목 매수운동, 한국선 쉽지 않아”

증권업계에서는 셀트리온 등이 한국판 게임스톱이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약 이들 종목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할 경우 공매도 세력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임스톱에서 헤지펀드들이 겪었던 것처럼 공매도를 포기하고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쇼트 스퀴즈’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증시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미국과 같은 극적인 상황은 연출되지 않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공매도는 주식을 되갚아야 하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면 최대 100%의 이득을 얻지만 오를 경우 손실은 무한대로 커진다.

미국은 하루 주가 변동폭에 제한이 없다. 게임스톱처럼 하루 100% 넘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하루 최대 상승폭(상한가)이 30%로 제한돼 있다. 주식매수 운동이 단기간 공매도 세력에 큰 타격을 주기는 어려운 구조다.

금융당국은 시장 충격은 물론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가 개입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한투연 등 주주게시판에서는 셀트리온과 에이치엘비는 물론 두산인프라코어, 국일제지 등 다른 종목 매수에 나서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미들의 주식 매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비슷한 전례가 없어 불공정거래 해당 여부를 법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면서 “단순히 특정 종목을 매수하자고 권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주식 매수를 권하는 주체 측이 미리 해당 주식을 사놨다가 나중에 주가가 오르면 팔아 차익을 실현할 경우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게 당국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한투연 내부에서도 미국 게임스톱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나타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게임스톱 여파로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가 3거래일 동안 각각 3.5%, 4.1% 하락했다. 한 회원은 “특정 종목 매수 운동은 결국 개미들 시체 위에 올라 앉은 소수 주주가 이익을 가져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오형주/양병훈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