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게임스톱' 쓰나미, 월가를 휩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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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스톱 등 개인투자자 매수가 집중된 일부 '잡주'가 수백%대로 폭등한 반면, 주요 지수는 작년 10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폭락했습니다. 다우는 2.05%, S&P 500은 2.57% 하락했고 나스닥은 2.61% 떨어졌습니다. S&P 500 지수는 올 들어 상승폭을 이날 하루에 모두 반납했습니다.
게임스톱은 개장 전 시간외 거래부터 100% 넘게 치솟더니 결국 133.13% 오른 344.99달러로 마감됐습니다. 올 초만 해도 10달러대였던 주식입니다. 게임스톱뿐 만이 아닙니다. 미국 최대 극장체인인 AMC엔터테인먼트는 한 때 420% 폭등하다 301.21% 상승한 채 마감했습니다. 익스프레스, 푸보TV, 코스코퍼레이션등 이른바 공매도 물량이 많은 주식들이 모두 세자릿수 대로 급등했습니다. 이들 주식들을 모은 'FANGG'(FUBO, AMC, NOK, GME, GOGO)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잡주' 태풍은 주요 지수를 끌어내렸습니다. 왜 일까요?
게임스톱 폭등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주식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WSB)에 참여한 310만 명(전날 240만 명에서 하루만에 70만 명 증가) 개미들의 매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들이 공격 대상으로 삼은 헤지펀드들, 이들에게 콜옵션을 판매한 대형 기관들도 모두 눈물을 머금고 게임스톱 주식 매수 대열에 동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롱숏 전략(주식을 사거나 공매도해서 돈을 버는) 멜빈캐피털 등 헤지펀드들은 작년 말까지 게임스톡에 대해 유통주식의 두 배가 넘는 물량을 공매도해왔습니다. 펀더멘털에 비해 주가가 비싸다는 이유에서였죠. 실제 게임스톱 주가가 300달러를 넘은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그동안 1.6달러였던 게임스톱의 목표주가를 10달러로 높였습니다. 아무리 높게 봐도 10달러를 넘기는 어렵다는 게 월가의 전반적 견해인 셈입니다. WSB에 모여든 '똑똑한' 개미들은 치밀한 월가 정복 작전을 세웠습니다. 이들은 공매도가 집중된 종목을 한꺼번에 매수해 주가가 급등할 경우, 헤지펀드들이 주식을 되사서 갚아야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숏 스퀴즈'입니다. 그러면 주가는 더 오르겠지요.
여기에 옵션도 함께 공략했습니다. 이들 주식의 콜옵션을 대거 매수할 경우 이를 판매한 월가 금융사들은 변동성에 따른 위험을 헤지해야 합니다. 통상 주식을 사들이죠. 이른바 '델타 헤지' 입니다. 특히 기초자산(주식)의 주가가 예상을 넘어 폭등하면 해당 주식을 대거 매수해 위험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감마 스퀴즈'라고 합니다. 즉 최근 개인 매수로 시작된 주가 폭등이 '숏 스퀴즈'+'감마 스퀴즈'를 동시에 발생시켜 주가가 끝도 없이 오른 것입니다.
개미들은 WSB에서 이런 구조를 논의하고 "그동안 개미 투자자들을 괴롭혀온 헤지펀드들을 깨부수자"며 달려들었습니다. 지난주 초 콜옵션을 매수한 개미들은 1만 달러를 투자해 100만 달러 수익을 냈다는 글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전날 115달러짜리 콜옵션 50개(매수 추정가 12만5000달러)를 샀다고 밝힌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소셜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하루 만에 포지션을 청산해 50만 달러를 벌었다고 밝혔습니다. 헤지펀드들은 그만큼 박살났습니다. 지난 25일 같은 헤지펀드 업계에서 27억5000만 달러를 긴급 조달했던 멜빈캐피털은 이날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수십억 달러 손실을 보고 백기 투항한 겁니다. 또 다른 헤지펀드 메이플레인캐피털도 30%대 손실을 본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헤지펀드 공매도가 많은 종목들이 모두 폭등하면서 많은 헤지펀드가 함께 대규모 손실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들은 통상 많은 레버리지(부채)를 동원해 주식,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데 공매도한 주식 폭등에 따라 마진콜(파생 손실 관련 추가 증거금을 요구받는 것)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면 손실 본 주식뿐 아니라 가진 자산들을 매각해 레버리지를 해소해야합니다.
월가는 수많은 주식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실제 이날 매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로 인한 조정 가능성을 예상한 일부 기관들까지 차익실현을 하겠다며 매도에 동참하면서 뉴욕 증시가 폭락한 것입니다.
게임스톡 사태는 금융당국 개입을 부르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았습니다. 실제 백악관 브리핑에서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재닛 옐런 재무장관 등 재무팀이 게임스톱 주식과 관련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빅숏'으로 알려진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트위터를 통해 "게임스톱 거래는 비정상적이고 미친 짓이며 위험하다.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썼다가 지우기도 했습니다. TD아메리트레이드 등 일부 증권사는 이날 고객 위험이 크다며 게임스톱, AMC 등의 거래를 제한했습니다. 이날 사태는 그동안 월가를 지배해온 위험자산 선호 심리를 흔들었습니다. 주가가 폭락했을 뿐 아니라 '안전자산' 달러는 강세를 보였습니다. ICE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7% 오른 90.8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금리는 10년물 국채 금리를 기준으로 한 때 연 0.998%까지 내려와 지난 1월6일 이후 처음으로 연 1% 아래로 잠시 떨어졌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Fed의 완화적 통화 정책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과 함께 게임스톱 사태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된 데 따른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올해 월가는 △주식 상승 △금리 상승 △달러 하락 등을 예상해왔는데 이날 시장은 이들 '월가 콘센서스'와 완전히 달리 움직인 겁니다. 그만큼 '게임스톱 쓰나미'의 영향은 컸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개인 투자자가 (월가를 상대로) 엄청난 승리를 거두고 있다-적어도 지금까지는. 게임스톱 주가 폭등은 월가 권력 역학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날 오후 2시 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종료 뒤 열린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에서 첫 질문은 예상대로 "게임스톱과 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였습니다. 그리고 파월 의장도 "개별 주식이나 시황 관련해선 언급하지 않겠다"는 예상되던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식 등 전반적인 자산 가격 상승에 대해 "최근 몇 달간의 상승세는 통화정책보다는 백신 보급과 재정 부양책 기대감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몇 달 안에 인플레 상승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일시적'일 수 있다. Fed는 인내할 것이다"라며 한동안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그는 "높은 인플레보다 낮은 인플레가 더 걱정된다. 우리는 높은 인플레는 어떻게 다뤄야하는 지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FOMC 결과도 예상과 같았습니다.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에서 동결했고 월 1200억 달러 규모의 자산 매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제 활동과 고용 회복 속도가 최근 몇 개월 동안 둔화됐다"며 경기 전망을 조금 더 부정적으로 바꿨고, 한 달짜리 기간물 레포(환매조건부 채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힌 게 눈에 띄는 변화였습니다. 전날 예상을 훨씬 넘는 4분기 실적을 내놓았던 마이크로소프트도 이날 게임스톱 쓰나미에 휘말려 0.25%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이날 장 마감 직후 실적 발표가 예정됐던 페이스북은 3.51% 내렸고 애플은 0.77%, 테슬라는 2.14% 하락했습니다. 전날 월스트리트의 예측보다 훨씬 나은 실적을 발표한 AMD마저 주가가 6.2% 급락했습니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전날보다 61.64% 폭등해 37.21을 기록했습니다. 조정장 막바지였던 작년 11월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모두가 예상해온 또 다른 조정이 시작된 것일까요? 작년 말부터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밝혀온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 등은 조정의 폭을 10% 내외로 보고 있습니다. 하반기 경기 회복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 경기민감주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개편해 이어질 상승장에 대비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월가 관계자는 "통상 예상되는 조정은 하락폭이 크지 않지만, 이번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로 시작될 때는 그 폭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