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고난 넘어 환희로' 불굴의 베토벤
“베토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느 음악애호가의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9개의 교향곡부터 5개의 피아노 협주곡과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 수많은 실내악곡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위안과 로맨틱한 정감, 웅혼한 기상은 베토벤만이 전해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그 선물의 정수는 다름아닌 ‘고난을 이겨낸 환희’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의 인생 역정이 그랬다. 천재성을 인정받은 어린 시절이었지만, 살짝 곰보에 누런 빛을 띤 얼굴과 검은 머리칼로 인해 ‘에스파냐인’이란 놀림을 받았다. 첫 시련은 소년시절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는 “죽음을 모르는 사람은 형편없는 자다. 나는 이미 열다섯 살 때 이를 알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본격 고난은 평생을 괴롭힌 청각장애였다. 27세의 창창한 나이에 그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난청(難聽)에 직면했다. 음악가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번민했고, 온갖 민간요법을 다 써보고 대체의학에도 의지해 봤지만 헛수고였다. 30대 초반에 쓴, 자살을 암시하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그래서 나왔다. 1818년부터는 대화를 위해 수첩이나 석판을 이용해야 했다. 1822년 오페라 ‘피델리오’ 리허설에선 들리지 않는 귀로 인해 연주가 엉망이 돼 버렸다. 오죽했으면 유언으로 자신을 부검해 달라고 했을까 싶다. 끊이지 않는 경제적 곤궁, 조카의 자살 시도, 파국을 맞은 양아들과의 관계 등도 쉽지 않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긍정과 신(神)에 대한 찬미로 간극을 메웠다. 그의 대부분 교향곡(2~9번)은 유서를 쓴 이후 작곡됐다. 일기에는 “너의 감각이 절반 정도로 제한적이니, 오직 예술세계에서만 살도록 해라”라는 대목도 나온다. 심지어 자신의 인생을 ‘희극’이라고도 했다. 운명하기 며칠 전 “친구들이여, 박수 쳐라. 희극은 끝났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틀 뒤(17일)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세계 음악계는 대대적인 기획공연과 이벤트를 준비했으나, 예기치 않은 코로나 창궐로 모조리 취소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의 9번 교향곡 ‘합창’에서 다시금 희망의 메시지를 얻을 때다. ‘환희의 송가’ 중 “신성한 그대의 힘은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자들을 다시 결합시키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란 가사(프리드리히 실러의 시)가 의미심장하다. 코로나를 물리치고 7년 뒤 ‘베토벤 서거 200주년’을 제대로 맞이하는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 본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