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성터서 방호별감 실체 밝힌 최초 고고학 자료 발견"
정확한 축성 시기 확인 위한 발굴 조사 필요…충남도 문화재 지정 추진
충남 공주시 계룡면과 반포면에 걸친 계룡산성이 고려 시대 몽고군의 침략을 방어하는 산성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5일 국립공원공단 계룡산국립공원사무소에 따르면 계룡산성은 1994년 국립공원공단 직원이 순찰 중 성곽 터를 발견하면서 처음 존재가 알려졌다.

이어 2003년 약식 지표조사, 2017년 지표조사가 진행됐고, 계룡산사무소는 전문가 회의 등을 거쳐 이날 계룡산성이 고려 대몽항쟁기 충남도와 전라도 일대로 침략하는 몽고군을 방어하는 데 이용됐다고 밝혔다.

계룡산성은 계룡산 정상인 천황봉(해발 846.5m)을 비롯해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과 남쪽 계곡부에 걸친 4㎞ 길이의 대규모 석축산성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된 복합 구조다.

전문가들은 계룡산성의 위치와 구조가 13세기 대몽항쟁기 백성을 피난시키기 위해 축조한 대규모 입보용산성(入保用山城)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축조된 산성은 해발고도 600m 이상의 험준한 지형에 5∼7㎞에 달하는 큰 규모로, '험산대성'(險山大城)이라고 불린다.

계룡산성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를 판단할 수 없지만, 계룡산성과 같은 형태의 험산대성 입보용산성은 대체로 몽고와의 5차(1254년)·6차 전쟁 중에 축성됐다는 연구가 있다.

몽고군은 5차 전쟁 이후 전라도 광주지역까지 진출했는데, 이때 고려정부가 몽고군을 방어하기위해 계룡산성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계룡산성터에서 '계룡산방호별감'(鷄龍山防護別監)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된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방호별감은 고려 후기 왜와 몽고의 침략 때 산성 등 지방 요지에 파견된 군 지휘관이다.

고려시대 문헌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방호별감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계룡산성터에서 발견된 이 기와는 문헌으로만 알려졌던 방호별감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힌 중요한 고고학 자료라고 계룡산사무소는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축성시기와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발굴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계룡산사무소는 발굴 조사 등을 위해 계룡산성을 충남도 문화재로 지정 신청할 계획이다.

또 연말까지 불교문화재연구소와 계룡산성의 역사적 의미, 산성의 입지, 축조방식, 유물을 조사해 축성사적 성격을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다.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 고찰과 사찰터 등에서 호국의승(護國義僧)의 행적을 조사, 대몽항쟁기 호국불교와 계룡산성의 위상도 정립한다는 방침이다.

조경옥 계룡산사무소장은 "숨어있는 역사적 보물인 계룡산성의 역사적 위상을 밝히고, 충남도 문화재로 지정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