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가 1989년 헝가리와 수교하기 위해 1억2500만달러의 은행 차관을 제공한 사실이 30년 만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헝가리와의 수교는 동유럽 국가 중 처음이었고,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북방외교’의 효시 격이었다.

31일 공개된 1988∼1989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한국과 헝가리는 두 차례 협상 끝에 1988년 8월 12일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고 그 이후 수교 교섭에 들어간다’는 내용 등을 담은 ‘합의 의사록’에 서명했다. 이 의사록에는 ‘한국이 헝가리와의 수교를 위해 6억5000만달러의 경협자금을 제공하고 특히 약속한 은행 차관(2억5000만달러)의 절반인 1억2500만달러를 헝가리에 제공한 뒤에야 수교한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한국은 실제 1억2500만달러 규모의 은행 차관 집행을 결정한 뒤에야 헝가리와 수교할 수 있었다. 한국은 1988년 12월 14일 외환은행과 산업은행 등 8개 은행이 헝가리 중앙은행에 1억2500만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고, 양국은 이듬해 2월 수교했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헝가리 측은 처음에 경협자금으로 15억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협상팀이 쓴 보고서에 따르면 1988년 7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된 1차 협상에서 헝가리가 처음 요구한 경협자금은 15억달러였고, 한국은 4억달러로 맞섰다. 이후 헝가리는 10억달러, 8억달러로 차츰 요구액을 낮췄고 8월 9일부터 열린 2차 회의에서 6억5000만달러에 합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헝가리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한국과의 수교에 소극적이었지만 경제난이 심화하자 태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의 수교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북한은 즉각 반발했다. 노동신문은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헝가리와의 단교를 시사했고, 김평일 주헝가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아울러 헝가리와의 외교관계를 대사대리로 격하한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