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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와 생명공학이 결합되면 인류는 소규모 슈퍼휴먼 계층과 쓸모없는 호모 사피엔스 대중의 하위계층으로 양분될 수 있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지난해 국내에 번역 출간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쌍둥이 혁명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인간의 권위가 빅데이터 알고리즘으로 넘어가고, 극소수 계층이 데이터를 독점하면서 디지털 독재와 불평등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AI를 장착한 로봇과 통합 네트워크가 일자리를 대신하면서 대다수 인간이 잉여인력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독거노인에게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는 효도 로봇이 사회복지사를 대신하고, ‘큐레이팅 봇’이 박물관을 안내하는 현실이니 이미 그런 시대는 사회 전반에서 시작된 셈이다. AI가 인간의 마음과 의식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인간 지능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일도 착착 진행 중이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AI를 통해 인간이 강화되는 현상은 인간을 잉여적 존재로 만드는 역설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과 대립하는 존재인가.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가 쓴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특수한 능력을 지닌 ‘강한 인공지능’이 도처에서 활약하는 시대에 인간의 존재 조건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탐색한 책이다.

저자는 인간과 기계를 대립관계로 생각하는 인간주의 또는 인간 중심주의에 반대한다. 보편적인 인간을 도덕성의 기준으로 삼는 일반이론으로는 오히려 인공지능과 로봇을 이해하고 평가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 그러면서 인간만이 도덕적 행위자이고 자율성을 갖는다는 전통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이보그와 인간 못지않은 수준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작동하는 기계와 로봇 등도 ‘사이버 행위자’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저자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발전해온 궤적을 돌아보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살핀다. 초기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모방하려 했지만 최근에는 그런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과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오히려 그런 변화 때문에 인간보다 우월한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인공지능 연구가 발전하면서 개발자들은 꼭 인간의 뇌를 모방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인간의 생물학적 뇌보다 더 잘 작동하는 인공신경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머신러닝은 전통적인 학습법과 어떻게 다르며 자기조직화를 어떻게 하고 인간과 같은 창의성을 발휘하는지도 살핀다.

저자는 또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을 구별하는 세 가지 방식을 소개하면서 이에 따른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갈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사이버 행위자, 하이브리드 행위자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아울러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발전이 근대적이고 전통적인 인간의 위상에 놀랄 만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전통적 휴머니즘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공허하게 그것에 호소하는 태도를 진부한 휴머니즘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기술적 낙관주의 속에서 인간의 향상을 전통적 휴머니즘의 연장이자 고양이라고 주장하는 트랜스휴머니즘, 더 이상 휴머니즘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과 기술의 동맹관계를 긍정하면서도 그 결합을 둘러싼 여러 위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포스터휴머니즘을 대비시킨다. 트랜스휴머니즘 주창자들은 인공지능도 얼마든지 인간보다 높거나 복잡한 의식을 가질 수 있고 그들에게 더 우월한 도덕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시스템과 네트워크 형태로 스스로를 강화하고 향상시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전개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다. 약물이나 기계장치를 통한 신체 기능 향상, 생명공학이나 의학 기술을 통한 생물학적 경계 넘어서기, 신경작용제를 통한 인지기능 및 감각 기능 향상, 뇌와 컴퓨터의 연결을 통한 뇌의 기능 강화, 인공지능과의 결합을 통한 지능 극대화….

하지만 인간을 강화하는 가운데 인간이 잉여가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는 단지 인공지능과 로봇에 일자리를 뺏긴 채 무기력한 잉여인간이 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통해 스스로 강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개인의 실존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잉여적’이다. 또 능력이 강화된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로 나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대량 실업과 양극화 심화도 예견되는 위협이다.

저자는 “기계나 인공지능, 네트워크 시스템이 앞으로 생명체 못지않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제까지 인간중심적, 생명중심적이었던 사회의 모습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해법은 없다. 다만 수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