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지난 7월 전화로 나눈 대화가 25일(현지시간) 녹취록 형태로 공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의혹을 조사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만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압박은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탄핵을 원하는 민주당과 역공을 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 측의 공방은 더 거세지고 있다.

녹취록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괄호 안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다.

▷젤렌스키=국방분야에서 커다란 지원 고맙다.

▷트럼프=부탁을 하나 들어주면 좋겠다. 우크라이나에 서버가 있다고 한다. (2016년 미 대선 때 러시아에 의해 해킹된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전국위원회 서버에 담긴 정보를 찾는 데 우크라이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트럼프=바이든 아들(헌터 바이든)에 대해 많은 얘기가 있고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바이든은 자신이 검찰 기소를 중지시켰다고 자랑하고 다닌다. 당신이 그걸 조사할 수 있다면…(좋겠다). 나에게 그것은(바이든 의혹은) 끔찍하게 들린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2016년 아들이 다니는 회사가 우크라이나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자 검찰총장을 해임토록 압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차기 검찰총장은 100% 내 사람이다. 그는 그 상황에 대해, 특히 그 이슈에 관해 당신이 얘기한 회사를 들여다볼 것이다.

▷트럼프=(내 개인 변호사) 줄리아니와 법무장관 바(윌리엄 바)가 당신에게 전화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진상을 규명할 것이다.

▷젤렌스키=(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DC로 초청해줘서 고맙다.

▷트럼프=줄리아니와 법무장관에게 전화하라고 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도중 바이든의 이름을 세 번 언급했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은 총 다섯 장짜리다. 백악관은 통화 상태가 좋지 않을 때도 있었기 때문에 두 정상의 ‘워딩’이 100% 정확하게 반영된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이 녹취록을 공개한 건 민주당이 전날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하원 차원의 탄핵조사를 개시하자 ‘의혹 해소’를 위한 차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민주당의 탄핵조사는) 미국 역사상 최대 마녀사냥”이라며 “(녹취록은) 아무것도 없던 통화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지렛대로 바이든 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군사원조와 바이든 의혹 조사 연계’ 의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 쟁점이다.

반면 전날 탄핵조사 개시를 선언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녹취록은) 탄핵 필요성을 확신시켜준다”고 했다. 애덤 시프 정보위원장 등 하원 산하 위원장 네 명도 공동성명을 통해 “외국 정부에 미국 선거에 개입하라고 요청한 것, 그것으로도 충분한 배신행위”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원조 보류를 협박했든 안했든 부정행위는 존재한다”고 공격했다.

뉴욕타임스(NYT) 자체 집계 결과 이날 오후 9시15분 현재 하원의 탄핵조사에 찬성하는 의원이 218명으로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최소 정족수를 넘었다. 찬성 의원은 모두 민주당 소속(235명)이거나 무소속이었다. 공화당 소속(198명) 중에선 찬성 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 일단 하원 통과는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을 통과하진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발단이 된 정보당국 내부고발자가 작성한 고발장이 26일 공개돼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CNN방송은 “이 고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 외국의 개입을 요청하는 데 그의 권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우크라 노골적 압박 없었지만…바이든 조사 집요하게 요구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가 이런 대통령의 시도와 관련된 핵심 인물이라고 기술한 부분도 고발장에 담겨 있다. 내부고발자는 또 백악관 당국자들이 미국과 우크라이나 두 정상 간 통화 기록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내부고발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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