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 사유가 아니라 나빠진 취업시장 상황을 이유로 구직을 단념한 사람은 41만9286명(전체의 77.0%)으로 작년보다 12.3% 늘었다. 경제의 ‘허리’인 30대와 40대 중 이 같은 사유로 취직을 포기한 사람은 각각 33.4%, 38.9% 급증했다.
'경제허리' 3040 구직단념자 30%↑…잠재성장률 갉아먹고 있다
경기 수원에 사는 양모씨(30)는 요즘 매일 오후 두 시간씩 학원에서 제빵기술을 배우고 있다. 작년 2월 수도권 한 대학의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정유·화학·화장품회사 30여 곳에 입사 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올초엔 잠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양씨는 취직을 단념하고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는 데 전념하고 있다. 그는 “‘취직 전쟁’에 다시 뛰어들기가 두렵다”고 토로했다.

양씨처럼 취업에 여러 번 실패해 직장 잡기를 아예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18일 분석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월평균 구직단념자는 사상 최대인 54만4238명으로, 3년 전인 2016년 상반기(44만6727명)와 비교해 21.8% 급증했다.
특히 악화된 고용 시장 상황을 이유로 구직활동을 그만둔 구직단념자가 가파르게 늘어났다. 통계청 조사 때 취업 포기 이유에 대해 “과거 일자리를 찾아 봤지만 없었다” “전공·경력에 맞는 일거리가 없다” “주변에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았다” 등으로 답한 사람들이다. 이런 ‘외적인 사유’로 구직을 단념한 사람은 41만928명으로 작년(37만3486명)보다 12.3% 늘어났다.
‘교육·기술·경험 부족’ ‘나이’ 등 개인적 이유를 든 사람은 지난해 12만7412명에서 올해 12만4952명으로 1.9% 감소했다. 외적 사유에 따른 구직단념자는 통계 작성 방식이 지금처럼 바뀐 2014년 이후 36만~37만 명대를 유지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40만 명을 넘어섰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30대와 40대 가운데 이런 사유로 구직을 포기한 사람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30대는 7만7737명으로 작년보다 33.4% 급증했고, 40대도 38.9% 증가한 5만7023명으로 집계됐다. 30대에선 ‘전공·경력과 일자리의 불일치’를 이유로 취직을 단념한 사람이 작년보다 107.1%나 급증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급속히 인상된 데다 정부가 기업의 투자·고용 확대를 독려하는 대신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 급급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일자리 사정 악화→장기 구직 후 취업 실패→취업 포기’의 악순환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급증한 구직단념자, 경제활동참가율 떨어뜨려
전문가들은 급증한 구직단념자가 경제활동참가율(만 15세 이상 인구 대비 경제활동인구 비율)을 떨어뜨리고, 이는 곧 경제 기초체력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2019~2020년 연평균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종전 2.8~2.9%에서 지난달 2.7~2.8%로 0.1%포인트 낮췄다. 한은은 추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잠재성장률 하향 조정 이유에 대해 “구직단념자 증가 등으로 경제활동참가율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경제성장에 대한 ‘노동 투입’ 기여도가 하락한 점을 반영했다”고 했다.
한국의 경제활력을 나타내는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해 63.1%로 전년 대비 0.1%포인트 떨어졌다. 연간 기준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이 하락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7%포인트 하락) 이후 9년 만이었다. 취업자와 실업자를 더한 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은 2010년 이후 8년간 15세 이상 인구 증가율보다 높게 유지해 오다가 지난해 역전됐다. 올 들어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노인층 일자리가 늘면서 소폭 반등하긴 했지만, 작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추 의원은 “고용시장의 활력이 금융위기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인데도 정부는 ‘실업률 등 고용지표가 개선되는 추세’라는 허무맹랑한 주장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경제활동인구에 속하는 구직단념자는 아예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간주돼 공식적인 실업률 통계에서 빠진다. 구직단념자가 많아지면 실업률(경제활동인구에서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30, 40대에서 구직단념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활기를 잃었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고용 상황을 좀 더 엄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