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칸 국제 광고제에서 올해 이변이 일어났다. 설립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소형 광고회사 ‘오버맨’이 파이널리스트 4개 부문에 올랐다. 제일기획에 이어 국내 광고회사 중 두 번째로 많았다. 이 회사는 올해 효과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가리는 광고제 ‘에피어워드 코리아’에서도 대상을 거머쥐고, 3년 연속 ‘올해의 에이전시’로 뽑혔다. 장승은 오버맨 대표를 만나 칸 국제 광고제 진출기와 캠페인 노하우를 들어봤다.
[너겟] '밀리의서재' 광고 만든 그 회사, 칸 국제광고제 진출하다
▶올해 칸 국제 광고제에서 4개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는데

큰 상을 받은게 아니여서 약간 미련은 남는다. 보통 대기업 인하우스 에이전시들은 광고제 출품을 위한 팀도 따로 있고 기획을 따로 출품의 가이드에 맞춰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버맨은 출품용 광고가 아닌 실제 문제의 솔루션을 가지고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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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리스트 진출작을 소개해달라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비영리 재단의 캠페인이다. 캠페인 제목은 ‘그리다 100가지 말상처’. 세이브더칠드런이 올해 100주년을 맞아 기획하게 됐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유니세프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보다 인지도가 뒤처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폭넓은 대중에게 존재감을 알리려는 캠페인을 원하고 있었다.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되기가 쉽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그런 문화가 많다. 그걸 깨는 게 캠페인 취지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가볍게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캠페인을 제작할지, 어떤 소재가 적합할지 찾다가 ‘언어폭력’이라는 주제를 찾게 됐다.

그 언어폭력을 전달하는 데 있어 그동안의 광고들은 어른이 어른을 계몽하는 그런 캠페인이 많았다. 하지만 오버맨은 아이들이 스스로 직접 이야기하게 하자고 판단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표현이 서투니까 그림으로 그 상처를 말하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결과 아이들 297명이 직접 100가지 상처받는 말을 그려보는 콘텐츠를 기획했다. 100가지 상처받는 말 목록은 아동심리학자들과 함께 정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아이들이 목록 중에서 자신이 상처받은 말들을 골라서 그때 감정이 어땠는지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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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 칠드런이 칸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결국에는 아이들의 그림이었던 것 같다. 내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게 아니라 아이들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트디렉터였던 셈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순수한 창작의, 표현의 힘으로 그림을 구현 해냈고 그것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전 세계의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광고제를 공략하기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언어의 차이 때문이다. 그림이 시각적 언어라는 인류 공통어였기 때문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우선적으로는 사람들이 ‘진짜 아이들도 어른과 똑같이 느끼는구나.’ ‘그들이 표현이 서툴러서 그 상처를 얘기하지 않을 뿐이지 속으로는 곪고 있었구나.’ ‘굉장히 슬픔이 많았구나.’ ‘아, 조심해야 되겠다’는 식으로 인식도 바뀌고 행동도 바뀌게 된 점을 (칸에서) 높이 평가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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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맨의 지향점과 세이브더칠드런 캠페인이 맞닿은 부분

오버맨이 지향하는 것도 사람들을 움직이는 일이다. 사람들을 움직여서 때로는 가치있는 기업의 제품들을 사게도 하고, 그런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게 바꾸는 일을 한다. 이런 면에서 사람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인식을) 바꿔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일을 오버맨이 가장 잘한다고 자부한다.

▶신생 광고회사가 에피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도 오버맨이 처음이라던데

그렇다. 그동안 에피어워드에서는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HS애드나 TBWA, 제일기획 등이 주로 상을 받았다. 오버맨은 올해 창립 4년 됐다. 그래서 올해 이변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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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맨은 ‘한번만 봐도 기억나는 광고’를 추구한다고 들었다. 어떻게 가능한가?

하루를 보내면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기억에 남는 사람도 있고 기억에 안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옷을 굉장히 요상하게 입었다든가 머리를 빨간 물을 들였다든가. 물론 그러면 기억에는 남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들리는 얘기를 하고, 나에게 의미있는 얘기를 했을 때 그 사람이 마음에 남고 계속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소비자가 의미있게 생각하는 얘기, 들리는 얘기를 하는게 첫번째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뻔한 방식으로 하는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흥미롭게 했을 때 한번만 봐도 잊혀지지 않는 광고가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번만 봐도 기억나는 광고여서는 안되고 한 번만 봐도 브랜드가 기억나는 광고여야 한다는 점이다. 광고는 본 것 같은데 무슨 브랜드인지 기억을 못하면 그 광고는 기능을 못한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 귀결은 브랜드가 돼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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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어워드에서 활약한 밀리의 서재 캠페인에 대해

밀리의 서재 측에서 여러 광고회사가 아이디어를 발표해 그 중 한 곳에 캠페인을 맡기는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여는데 참여 의사가 있느냐고 먼저 제안이 왔다. 독서앱이라고 해서 내가 책도 좋아하고 하니 흔쾌히 참여하게 됐다. 경쟁 프레젠테이션 결과 오버맨이 수주해서 집행하게 됐다.

▶밀리의 서재 캠페인은 광고 집행비 대비 효과가 어느정도 나왔는지

광고주가 대외적으로 정확한 수치를 발표하기를 좀 꺼려하는 면이 있지만 성과는 굉장히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오버맨이 G9라는 쇼핑앱 광고를 했을 때 거래액이 600% 증가한 경험이 있다. 이번 밀리의 서재 캠페인 가입율은 그것보다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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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사전조사를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내가 책을 좋아하는 타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나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나 오류에 빠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오버맨은 조사를 굉장히 철저하게 하는 편이다. 근데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요즘 세대들은 책을 소비하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우리 세대는 책을 정독한다. 종이책이든 e북이든 간에. 그런데 요즘 세대는 네이버에서 요약된 스토리를 읽었어도 책을 읽은 것으로 친다. 아니면 유튜브에서 책을 읽어주는 유튜버들이 읽어주는 영상 하나 봐도 독서를 한 거다. 이들이 책을 다양한 형식으로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게 새로웠다.

그러나 새롭지 않은 공통점도 있다. 시간이 없고, 세상에는 즐길 거리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서는 계속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너무 놀라웠던 사실은 2017년 OECD 국가 독서율 순위 중 한국이 최저를 기록했다. 정리하자면 도서 소비의 다양성을 알게 됐고, 어떻게 이들이 독서하게 만들까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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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맨에 제시한 솔루션은 무엇이었나?

당시 광고주가 줬던 숙제가 굉장히 어려운 ‘초 고난도’였다. 예를 들면 한국이 OECD국가 중에서 독서율 최저인데, 시장조사를 해보니 1년에 세 권 이상 읽는 사람이 전 국민의 5% 더라. 그리고 한 권이나 두 권 읽는 사람이 65%, 한 권도 안읽는 사람이 30%였다.

어떻게 보면 시장성이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월 9900원 무제한 독서를 즐길 수 있다고 해도 책 한 권이 9900원이라고 가정할 때 1년에 12권을 읽어야 본전을 뽑는셈이어서다. 이렇게 12권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전국민의 5% 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광고주는 가입자수가 굉장히 많이 늘어나기를 바랐다.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기본이고 실제 구독자까지 많아져야 이 캠페인에 대한 투자수익율(ROI)이 나올 것이다. 밀리의 서재는 그냥 앱을 다운받고 끝나는게 아니라 내가 돈을 내야한다는 점에서 허들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일반적인 앱 광고와는 달랐다. 세상에 수많은 앱 광고가 있지만 이번 캠페인은 굉장히 어려운 숙제였다. 넷플릭스나 멜론 같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소비를 많이 한다. 접근하기 쉽고, 내가 본전 뽑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책은 그렇지는 않으니까 어려운 숙제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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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단은 책을 좋아하는 5%의 소비자층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에 관심이 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덜 읽게 되는 사람들의 독서욕구를 해결해주는 그런 앱으로 처음에 포지셔닝을 하겠다고 광고주를 설득했다.

▶5% 헤비유저를 처음 공략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어떻게 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끌리는 그런 캠페인을 만들까’ 그 관점에서 모델, 아이디어 등 모든 전략을 짰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심리를 파고들고 스위트 스팟(sweet spot)을 정확하게 찌르는 지가 관건이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 읽어야 할 책 리스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나는 그 당시에 ‘사피엔스’가 그런 책이었다. 두꺼워서 세 달동안 집 책장에 놓여있는데 하도 바쁘니까 읽다가 말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틈틈히 읽으면 금방 읽을 수 있겠더라.

그런 책 리스트가 시즐(sizzle, 고기가 지글지글 익는 소리를 들으면 고기를 먹고싶어지는 것처럼 어떤 니즈를 자극하는 효과)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음식 광고에서 맛있게 먹는 장면이 욕구를 자극하는 시즐의 역할이듯이 끌리는 책 이름 자체가 시즐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역사의 역사’라든가 ‘사피엔스’ 등 당시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끌려할만한 베스트셀러와 고전을 섞어서 ‘독서 배틀’에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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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사람들이 지적 과시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를 한 뒤 꼭 인스타그램 같은데 올린다. 굉장히 많다. 북스타그램 해시태그도 많고, 지금 읽는 책 해시태그로 검색해봐도 사람들이 올려둔 책 사진이 많다. 그걸 보고 뭔가 과시를 하는 그런 포맷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 독서 배틀이라는 포맷을 짜보자’는 생각이 그렇게 나왔다.
그런 독서배틀을 누가 하면 좋을까? 책 좀 읽을 것 같은 사람이어야 공감이 가고, ‘나랑 되게 비슷한 사람이네’라고 동일시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광고모델을 선정했다.

마지막으로 밀리의 서재 브랜드명을 짧게 부르면 ‘밀리’라서 ‘독서 무제한 친해지리’ 라고 라임을 맞춰 브랜드가 기억되게 카피를 썼다. 이 회사 서비스의 핵심 속성인 ‘무제한’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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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모델로 배우 이병헌·변요한씨를 기용한 이유를 자세히 들려달라

같은 모델이어도 타이밍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당시 미스터 선샤인이 한창 방영중이었다. 그래서 미스터 선샤인을 보면 이병헌씨와 김태리씨의 ‘케미’도 좋았지만 이병헌씨와 유연석·변요한씨의 브로맨스 즉, 남자들끼리의 케미가 참 재밌었다. 그래서 김태리씨와 함께 섭외할 생각을 해봤지만 결국은 남자 대 남자로 짝을 이루자는 결론이 났다. 그 중 변요한씨가 이미지상 배틀의 맛이 조금 더 살 것 같았다. 치고 받는 느낌이랄까? 약간 능청스러운. 그래서 캐스팅을 하게 됐다.

▶밀리의 서재 다음으로 준비하는 차기작 캠페인은?

뉴오리진(new origin)이라는 브랜드의 화장품 캠페인이다. 원래 뉴오리진은 건강기능식품으로 작년에 출시한 유한양행의 라이프스타일브랜드다. 당시 캠페인은 제일기획이 진행했다. 뷰티 브랜드 캠페인은 비딩을 통해서 오버맨이 선정됐다. 그래서 브랜드 광고와 제품 광고를 함께 집행하게 됐다.

이 캠페인도 성과가 광고 릴리즈 하자마자 다음날부터 검색량이 10배 이상 치솟고 자사몰 유입도 전무후무하게 많이 일어나고 있다. 판매량도 많이 늘어서 뉴오리진의 품목 중에서 가장 높은 판매를 기록중이다.

광고 자체도 좀 의식있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왜냐면 의식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제품들이 제대로 생산되고 있는가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서 그 오리진을 다시 쓰겠다는 진정성 있는 브랜드다. 그래서 ‘브랜드의 저널리즘’을 콘셉트로 잡아서 광고하고 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올해의 중점 목표가 있다면?

망하지 않는것? (웃음) 매해의 목표는 어쨌든 망하지 않으면서 내 뜻과 꿈대로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밥도 먹으면서 꿈도 계속 꿀 수 있는 것, 그리고 꿈대로 행동하면서 살 수 있는 것. 그게 목표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